가난한 이름에게
많은 우리 주변의 시인, 예술가들은 동년기를 거쳐 그의 육체적, 정신적 여건이 활력을 갖게 되는 청춘기에 가장 기능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 그리고 장년에 접어들면서 그것이 더욱 무르익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나이가 쉰이 되고 예순에 접어들면 황혼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한다. 젊은 날 왕성하게 작품을 매만진 의욕 대신 그의 작품에는 어느새 나태하며 헤식은 손길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남조 시인의 경우 이런 일반적 자연연령론은 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등단 초기인 20대에 이 여류시인은 어느 편인가 하면 낭만적인 의식으로 다소한 정감이 앞선 시들을 썼다.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시인의 시는 그 위에 구조적 탄력감이 곁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 시인의 보폭은 불혹의 나이를 지나 이순(耳順)의 고개를 넘기고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또 김남조 시문학의 특성 중의 하나는 남다를 만큼 선명한 사랑의 미학이다. 이 사랑의 미학은 에로스적인 것과 아가페적인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있다. 이성간의 뜨겁고 에로스적인 사랑은 동시에 절대자(혹은 부모)를 향한 아가페적 사랑을 동반하여 합일되고 있다. 이런 독특한 특성으로 이제 한 시대의 시단을 주도하는 주역이 된 시인이 펼쳐 보이는 문화의 풍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