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 들뢰즈 푸코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라캉,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사상사, 해체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1. 한물간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의 普遍과 合理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解體되었다. ‘모더니즘’ 보편과 합리의 主體가, ‘利益과 戰爭’에 의해 작동하는 ‘道具的 理性으로서 權力’이었던 탓이다.
現實世界가 죄다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무런 代案도 제시하지 않는다. 애당초 ‘革命的 解體’만을 목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 온갖 해체 이후 찾아드는 것은, 응당 또 다른 ‘이익과 전쟁’이다. 그런 것이 人類史의 작동원리다.
‘生成과 解體의 되돎’은 역사의 本源的인 작동원리다. 생성의 시기가 지나면, 해체의 시기다 도래한다. 이는, 자연스런 법칙이며 현상이다.
다만, 인간존재의 限時的 生을 놓고 본다면, ‘人間事的 생성과 해체’는 실현되지만, ‘人類史的 되돎’은 ‘佛家的 輪回’와 같은 허무맹랑한 상상 속에서 가능할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生成的이거나 解體的인 樣相을, 동시적으로 드러낼 수 없으며, 대체로 兩者擇一的이다.
때문에 人類史는 ‘생성과 해체의 되돎’으로써 작동함에도, 人間事는 ‘생성과 해체’로써 한정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인간존재가 ‘생성과 해체의 되돎’이라는 天地自然의 本來的인 작동방식을 體得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보다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지금 여기’에 이르도록, 그러한 가능성은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세계가 죄다 해체된 후, 人類史는 다시 ‘이익과 전쟁의 법칙’에 의해 조작될 것이다.
그러한 되돎으로써나 人間事와 人類史는 작동한다. 참으로 애석하지만, 고작 그런 것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代案’으로서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postmodernism’ 또는 ‘後期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後(post)’의 서양의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적 解體運動을 일컫는다.
一言以蔽之하여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물간 철학사상이다. 게다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별다른 代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포스트모더니즘은, 解體된 모더니즘 이후에 대하여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철학사상이 아닌 탓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解體哲學이라고 불린다. 現實世界 ‘온 존재와 온갖 것’들을 해체함으로써, 세계 자체의 해체를 목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체를 목적할 뿐, 해체 이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한물간 철학사상이 되었다.
모더니즘의 理性中心主義에 대해 근본적인 懷疑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의 총칭으로서, 2차 세계대전 및 女性運動, 學生運動, 黑人民權運動과 構造主義 이후 일어난 해체현상의 영향을 받았다.
키워드로는 ‘데리다’가 주장한 ‘解體(deconstruction, 脫構築)’인데 脫中心的, 多元的, 脫理性的 思考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196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용어 자체가, 역사학적 구분에서 근현대에 스쳐간 수많은 것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학자, 지식인, 역사가 사이에서, 그 정의를 두고서 극한 논쟁이 일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던적 생각이 철학, 예술, 비판 이론, 문학, 건축, 디자인, 마케팅/비즈니스, 역사해석,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postmodernity’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구분되는 용어로 사용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생한 시기의 사회·문화의 接變現象만을 가리킨다.
학자들과 역사가들의 대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수많은 모더니즘의 주요 개념으로부터 反撥과 借用을 통해 모더니즘을 확장하거나 대체시킨 사조로 본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은 合理性, 客觀性, 進步性과 같은 理想에 많은 의미를 두었다. 이것들 이외에도, 19세기 후반 實證主義, 實在主義, 啓蒙思想 등에 뿌리를 둔 여타 사상들을 중시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신봉자들은,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이 특수한 경제·사회적 상황의 결과로써 도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특수한 경제·사회적 상황’이란, 後期資本主義와 미디어 매체의 성장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당시 사회를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진입하게 하였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신봉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상가와 저술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모더니즘의 확장일 뿐이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前期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은, 우리 시대의 경제적·기술적인 상황들이, 소통과 의미의 항구적이고 객관적인 것, 즉 ‘實體(이데아)’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疏通, 製造, 交通의 혁신에서 비롯된 세계화는, 분립된 근대적 삶이나 문화적 다원론, 상호 연결되어 정치, 소통, 지식생산 등의 집중화된 중심을 잃고, 상호 연결된 세계사회의 한 원동력으로 종종 언급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와 같이 分立된 사회가 필연적으로 거짓에 대한 반작용으로서나 혹은 ‘巨大敍事(meta-narrative)’와 ‘覇權(hegemony)’의 單一化와 같이, 포스트-모던으로 표현되는 應答, 認識을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단일화’란 전통적 장르, 구조와 문체의 틀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는 ‘로고스 중심주의’의 범주를 顚覆시킨 것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철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예술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寫實主義(Realism)’와 모더니즘의 反撥作用으로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두 영역에서 서로 추구했던 점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철학에서 胎動하기 시작한 것은, 모더니즘과 구조주의의 반발작용이었다. 構造主義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것이 포스트구조주의로 이어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당히 비슷한 개념이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분류되는 철학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률적인 것을 거부하고, 多樣性을 강조하였으며, 理性을 중시하며 등장한 모더니즘이 추구한 정치적 해방과 철학적 思辨도 ‘하나의 이야기(巨大敍事)’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했다.
또한 칸트가 純粹理性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했던 理念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치철학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에 끼친 영향도 컸다. 예를 들어, 미술, 음악의 대중화와 미술에서 등장한 팝아트와 비디오아트, 음악에서 등장한 랩과 같은 장르의 발생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장르는 기존의 예술과는 매우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자율적이며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에서는 장르의 벽이 느슨해지고, 全知的 시점보다는 다른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현실감을 증대시키고 독자의 상상력을 중시하게 된다.
소설 따위의 마지막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고, 독자가 생각하게끔 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작가 위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독자가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는, 모더니즘이 대표하는 理性이 좀 더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 이성이 도구로 변질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박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前衛藝術, 그리고 ‘解體(Deconstruction)’ 혹은 後期構造主義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近代(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啓蒙主義로부터 시작된 理性中心主義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合理主義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써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는, ‘崇嚴(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寫實主義(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前半 ‘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再現(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遠近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實在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적 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懷疑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對象은 보는 자의 主觀에 따라 다르다는 前提도, 미술에서는 印象主義로부터 시작되어, 立體派 등 具象보다 抽象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獨白(의식의 흐름)’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인해 대중과 遊離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理性과 普遍性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現代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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