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가 자신의 영혼을 어느 한 소리에 묶어 자아를 그 음성 속에 몰입 시키지 않고 모든 소리를, 전체를, 단일의 것을 들었을 때에, 비로소 수천 소리의 위대한 노래가 단 한마디의 말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말은 완성의 뜻『옴』이었다......'
본질적으로 지혜란 무엇이며 자신의 오랜 탐구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깨달음, 즉 인식이 싯달타의 마음 속에서 서서히 꽃피고 성숙해 갔다. 그것은 삶의 한가운데서 순간순간 단일(單一)의 개념을 생각하며, 느끼고, 들이마실 수 있는 마음의 준비이며 능력, 영혼의 태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인식이 점점 그의 마음 속에서 꽃피어 갔고 바수데바의 동안(童顔)에서 점점 그에게로 반사되어 왔다. 조화(調和)가, 세계의 영원한 완전성에 대한 깨달음이 미소가, 단일성이...
하지만 상처는 여전히 아팠다. 애타게 간절하게 싯달타는 아들을 생각하며 가슴 속에 사랑과 애정을 간직하고 고통에 시달리며 온갖 사랑의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 불꽃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 관조가 찰나의 일이었는지 백 년간 지속되었는지 의식하지 못하며, 그것이 싯달타인지 고오타마인지, 나와 너가 존재하는지 어떤지 의식하지 못하면서, 신의 화살에 심장부를 맞아 상처를 입었으되 그 상처를 달콤하게 느끼듯이, 마음속 깊이 황홀과 구제를 느끼면서 고오빈다는 한동안 그대로 선 채 싯달타의 고요한 얼굴 위로 몸을 굽혔다. 그는 소리없이 미소짓고 있었다. 고요하고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자비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같고, 조롱에 가득 찬 것도 같은, 지존의 미소와 똑같이 싯달타는 웃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부 독일 슈바벤의 소도시 칼브에서 출생했다. 스위스의 바젤에 거주하며 아버지가 스위스 국적을 얻었다. 그후 고향 칼브로 돌아와 괴팅겐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녔으며,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7개월 후에 중도에 그만 두었다. 1892년 칸슈타트 김나지움에 다니며 중등 학교 자격 시험을 치룬 후 학업을 중단했다. 칼브에 있는 페로 탑 시계 공장 실습공이 되어 그때부터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헤세는 1899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와 산문집 「한밤중 후의 한 시간」을 발표하였다. 1904년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고, 마리아 베르눌리와 결혼하여 보덴 호수 근방의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했다. 1906년 장편 「수레바퀴 밑에서」를 간행했고 이때 수필을 많이 썼다. 헤르만 헤세는 1913년까지 잡지 '3월'의 편집진이 되어 이 잡지에 자신의 글을 발표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헤세의 40대의 작품인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하였는데 전후의 젊은 세대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작품으로 폰타네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지만 그 상이 신인들을 위한 것이므로 자기 이름을 밝히고 되돌려 준 다음 이듬해 9판부터 본명으로 간행했다.
1931~1943년에 걸쳐 발표한 작품으로는 「싯달타」「어린이의 영혼」「클라인과 바그너」「클링소르의 마지막 영혼」「내면으로의 길」「괴테에의 감사」, 전원시집 「정원에서의 시간」으로 고트프리트 켈리상 수상, 그의 마지막 작품인 「유리알 유희」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헤세는 1946년 프랑크푸르트의 괴테상 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의 75회 탄생일을 기념하여 6권으로 된 「헤세전집」을 간행했다. 그는 독일 서적상의 평화상을 받았고, 헤르만 헤세 상을 창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