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소에서 생긴 일
순미는 졸다 깬 사람처럼 갑작스런 몸짓으로 웅덩이 옆에 주저앉아 팔을 물 속에 집어넣었다. 손을 마구 휘저었다. 그녀의 팔소매만 물에 흠뻑 젖었다.
‘어딜 갔지?’
‘누가 죽였나?’
헛소리처럼 그녀가 중얼거렸다.
순미는 할미소에 등을 돌렸다. 그녀는 빈 몸으로 둔덕을 기어올랐다. 물에 젖은 팔소매가 물이 빠지면서 얼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뛰는 걸음으로 걸었다. 순식간에 비각까지 왔다. 시커먼 비각이 그녀를 가로막고 서는 착각을 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지러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추악하게 보였다. 그녀는 그녀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죽이지 않았어.’
‘난 안 죽였어.’
그 소리는 잔뜩 겁에 질린 것이었다.
순미는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면 그럴수록 자기가 죽였다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의심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늪으로 빠져드는, 그런 참혹한 상태라고나 할는지.
나는 안 죽였어.
순미는 비각이 무서워 도망가며 열심히 열심히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살인에 대한 확신이 밀물처럼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