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사냥
끝이 없는 듯 이어지는 러시아의 숲길을 달려 도착한 외딴 오두막. 그곳에서 불현 듯 화해의 예감이 찾아온다. 오래된 앙금, 내 마음 속 여우를 잡으러 떠나온 길에서, 위대한 예술과 소박한 삶의 모습이 주는 뜨거운 위로가 크롭체카 향기, 혹은 푸슈킨의 시처럼 가슴을 녹인다.
날은 그새 어둑어둑해지고 흰 눈이 내비치는 검은 숲 한쪽으로 갈리나의 빨간 열매들이 마치 흰 토끼의 빨간 눈빛처럼 익어 있었다. 딱딱하고 약간 시큼한 흑빵도 자꾸만 씹어감에 따라 들큰한 맛을 내고, 나는 내 생애에 그런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믿을 수 없이 고맙게 여겨졌다. 저 전쟁의 참화 밑에는 밀기울로 만든 개떡도 먹고 술지게미도 먹으며 연명한 적은 있지만 그토록 딱딱한 빵 한 조각으로 한끼의 식사를 한 것은 내생에 처음이었다. 게다가 해가 기울면서 날씨가 다시 추워지는지 빵을 씹고 있는 위아래 잇바디가 따그락거리며 부딪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행복했다.
푸슈킨이라…… 이것이 무엇일까…… 하는 순간 머릿속을 섬광같이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푸슈킨. 그것은 저 시인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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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것은 저 푸슈킨의 시집이었다. 거친 숲에서 잡아왔을 짐승의 뿔로 칼을 만들고, 감자 농사를 지으며 사는 그 텁석부리, 이제야 밝히지만 지금 엽총을 만지고 있는 볼로자보다 더 수상쩍게 여겨지던 저 텁석부리가 자작나무를 넣은 페치카 옆에서 흐린 등불을 벗삼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푸슈킨의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