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기 5분 전
'우정'이라는 달콤한 말 속에 숨은 것
‘마음이 자라는 나무’의 스무 번째 책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일본의 인기 작가 시게마츠 기요시의 장편 소설이다. 열 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는 연작 소설집으로, 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친구 사이의 갈등과 질투, 경쟁심, 집단의식과 그로 인한 개인의 소외감 등을 담담히 그려 내면서 성장통을 겪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2005년 출간 당시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오를 만큼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유어 프렌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일본 문부성 추천 영화’로 선정되는 등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유어 프렌즈」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7월에 열린 ‘제10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바 있고, 내년 초에는 정식 개봉을 할 예정이다.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학창 시절 최고의 가치를 우정이라고 여기는 여느 ‘착한’ 성장 소설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작가는 ‘공동체 의식’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당함을 지적하고, ‘친구 사이’라는 얼핏 완벽한 듯 보이면서도 한없이 위태로운 관계의 폭력성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관계란 과연 무엇이며,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는가’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단정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때론 따뜻하고 유쾌하게, 때론 섬뜩하리만치 예리하게 빚어낸다.
열 개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는 중심인물은 뜻밖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이즈미 에미. 그녀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성장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점차 주변 인물들로 시점이 옮아가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몸이 아파 일 년에 반 이상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유카, 세상에 없는 단짝이면서도 라이벌 관계인 후미와 모토, 친구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늘 우스운 행동을 일삼는 호타, 후배들보다 잘하는 것 하나 없다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토 등 한 번쯤은 같은 반이었을 것 같은 친근한 인물들은 에미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친구와 왕따, 그 미묘한 관계의 역학
『친구가 되기 5분 전』의 거의 모든 이야기는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작가는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학교 안에서도 ‘관계의 역학’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훨씬 더 적나라하고 노골적임을 드러낸다. 그것은 나와 너의 관계,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의 관계, 개인과 집단의 관계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히 많은, 흔히 우리가 친구나 우정이라는 단어로 쉽게 정의 내리는 그런 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해관계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집단이 개인을 철저히 소외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과연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바로 그 물음을 통해 ‘모두’로 표현되는 다수와 개인과의 관계를 되묻게 하고,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게 한다. 이는 ‘학교’라는 특정 장소를 벗어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바로 그런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허공에 붕 떠 있는 관념적인 넋두리가 아닌 청소년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이성에게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나 친구와의 경쟁에서 생기는 고독감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닌 ‘나’, 혹은 ‘너’에 관한 이야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이인칭 시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화자(작가)는 여덟 명의 등장인물들에게 일일이 ‘너’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는 여덟 명의 ‘너’가 존재하며, 그 때문에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인물 하나하나까지도 자신의 이야기에서만큼은 주인공이 될 기회를 얻는다.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뛰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 평범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작품 안에서는 어떤 인물이든 똑같은 무게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개인’의 가치, 그리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모두’가 아니라 ‘나와 너’로 묶이는 내밀한 연대감의 중요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한 ‘모두’ 속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특별한 마이너리티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같은 고민을 지닌 청소년들에게 나름의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성인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다양한 맛과 온도를 지닌 시게마츠 기요시 문학의 정수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옴니버스식 구성, 이인칭 시점 등 다양한 형식의 변주를 통해 소설 읽기의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더불어 이러한 형식은 ‘집단’ 안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는 우열이 개인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것이며, 모든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생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는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기존의 성장 소설처럼 어른의 시각에서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느낌이 아니라는 점도 이 작품이 지닌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시게마츠 기요시는 일본 문단 최고의 이야기꾼답게 이제 막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시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느낄 법한 다양한 감정을 때로는 안단테로, 때로는 프레티시모로 강약을 조절해가며 자유자재로 풀어놓는다.
『친구가 되기 5분 전』은 따뜻하면서도 서늘하고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말 그대로 다양한 맛과 온도를 지닌 기요시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장편 소설이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듯한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