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저자
앨리스 로버츠
출판사
푸른숲
출판일
2020-02-10
등록일
2020-06-11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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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길들여진 종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7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우리 주변을 환기시키는 과학 스토리텔링의 걸작-브라이언 콕스(물리학자)


인류의 역사는 ‘길들임’의 역사다!
개,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그리고 인류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수십만 년 동안 우리 조상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약 1만여 년 전 세계 곳곳에서 ‘신석기 혁명’이 일어났고, 인류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꿨다. 인류가 비로소 ‘인류답게’ 창의성과 사회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먹고, 들판에 뛰어다니는 동물을 사냥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야생의 씨앗을 골라 밭에 심었고, 사냥과 농사를 도울 동물을 집으로 들였다. 인간을 도운 협력자 종 덕분에 인류는 혹독한 겨울을 버티며 생존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와 협력한 동식물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협력자 종들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약 1만 1천 년 전 동아시아와 중동에서 처음 시작된 신석기 혁명은 현대 세계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발전이었다. 그로써 우리는 다른 종들과 서로 진화적 경로가 맞물린 공생 관계로 얽히게 되었고, 농경은 전 세계 인구를 어마어마하게 늘릴 힘을 만들었다. -19쪽

해부학, 진화론, 발생학을 연구하는 생물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앨리스 로버츠 교수는 신간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놀라운 야생의 과거를 지닌 열 가지 종의 오래된 역사를 발굴한다. “인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망하는 탁월한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고고학, 언어학, 역사학, 유전학, 지질학을 넘나들며 ‘길들임’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야생의 씨앗과 들판의 동물이 인류에게 중요한 협력자가 되기까지의 경로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놓는다.

프랑스 곤충학자이자 식물학자였던 파브르(장 앙리 파브르)는 “역사는 우리가 죽음을 맞는 전쟁터는 칭송해도 우리가 먹고사는 밭에 대해 말하는 것은 비웃는다. (…) 인간은 이리 어리석다”고 말했다. 우리는 밥과 빵, 닭고기와 소고기, 우유와 치즈를 먹으면서도 수많은 야생 동식물 중에 왜 쌀, 밀, 닭, 소 등이 인간의 주요 먹거리가 되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실은 너무 익숙해 그 기원과 역사를 묻고 따지는 일조차 어색하다. 하지만 인간이 야생에 흩뿌려진 씨앗을 경작하고, 들판을 떠돌던 동물을 길들인 덕에 인구 증가와 문명의 성장이 가능했다면? 감자의 경작이 인간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면? 소의 가축화가 인간의 DNA 변화를 가져왔다면? 인간이 다른 동식물을 길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길들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면? 인류와 길들여진 종이 어떻게 상호 의존해왔는지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화의 꽤 많은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앨리스 로버츠는 인류가 길들인 많은 종 가운데 열 개의 종을 골랐다. 개,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인류’다. 1만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서부터 최첨단 과학 기술을 선보이는 21세기 유전자 연구소까지, 저자는 깊고 넓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면서도 ‘야생동식물이 언제, 어떻게 인류와 협력자가 되었고 그들이 인류의 생존과 성공에 어떻게 조력했을까’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 저자는 길들임의 기원과 경로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량 문제, 기후 변화, 줄어드는 야생 등 인간이 초래한 지구의 위기를 직시한다. “우리와 협력하게 된 종들만 돌봐서는 안 되며, 야생과 함께 번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번 세기의 과제다”라고 말하는 이 책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인 이유다.

야생종에게 좋은 것은 우리에게도 좋다. 우리는 진화와 생존이라는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의 운명은 다른 종들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 -543쪽

BBC가 가장 신뢰하는 과학자 앨리스 로버츠 교수가
고고학, 언어학, 역사학, 유전학, 지질학을 넘나들며 추적한 길들여진 종의 기원과 역사

앨리스 로버츠는 영국 버밍엄 대학교 ‘대중의 과학 참여’ 교수이자 BBC에서 다수의 과학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한 영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과학자이기도 하다. 2018년 BBC와 진행한 다큐멘터리 〈과학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는 동물들의 우수한 신체 특성들을 자신의 몸에 적용해 ‘앨리스 2.0’이라는 인체 모형을 제작한 프로젝트로 화제를 낳았다.
길들임의 기원과 경로는 2백 년 넘게 학계를 사로잡아온 이슈다. 19세기 과학자 찰스 다윈은 “길들여진 종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은 별개의 야생종, 즉 조상이 여럿 있었다는 뜻이다”라고 생각했고, 세계 최고의 식물 사냥꾼이라 불리는 20세기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종이 독자적인 한 장소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최근 과학 기술의 진보로 고고학과 유전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길들여진 종의 기원을 둘러싸고 해마다 새로운 가설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한다. 앨리스 로버츠는 이 책에서 역사적 자료와 여러 과학적 가설들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하나하나씩 검증해나간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고, 들은 것을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전하는 저자의 수려한 필력도 이 책의 묘미다. 신석기 수렵채집인들이 어떻게 감자를 예비 식량으로 활용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탄자니아의 수렵채집인 집단 하드자족과 생활하고, 소의 조상인 오록스 발자국이 발견된 폼비 해변의 지질 상태와 소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사륜구동을 타고 모래언덕을 달린다. 인간과 말이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하는지 경험하기 위해 칠레의 말 농장에서 ‘조리타’라는 말을 만나고 닭의 질병 저항성을 높이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연구하는 에든버러 로슬린 연구소를 찾아 유전자 변형을 둘러싼 논란을 재점검한다.
한편 이 책은 찰스 다윈과 니콜라이 바빌로프를 필두로,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책상머리를 벗어나 들판, 산, 바다, 동굴을 누비며 동식물의 놀라운 기원과 진화를 탐구해온 과학자들의 눈부신 발자취,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유전자 변형 기술 등 최신 과학 기법을 두루 소개하고 있어 ‘생물학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인간에 의해 작아진 소, 살기 위해 인간을 택한 개
우리는 선택하고, 선택 당한다

흔히 작물화와 가축화는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앨리스 로버츠는 이 책에서 길들임은 ‘쌍방’의 과정이며 인류 역시 길들임의 주체이자 객체라는, 신선한 주장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늑대에서 진화한 ‘개’다. 저자는 약 3만 년 전 수렵채집인들이 한 장소에서 점점 더 오래 머물며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배고픈 늑대들이 인간 사냥꾼들이 가져오는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인간 집단에게 접근한 늑대 중 공격적인 늑대는 쫓겨났겠지만, 경계심을 발휘해 신중하게 접근한 늑대는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선택 받은 늑대는 인간의 친구가 되면서 ‘개’답게 변했다. 그리고 인간과 같이 살면서 육식의 식성을 가진 개는 ‘잡식’이 되었다.
순한 늑대와 인간 사이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갔다. 더 이상 가까이 살면서 서로를 용인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공생 관계,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었다. 인간이 단지 먹을 것을 주는 존재만이 아니게 되었을 때, 늑대들은 야영지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제 늑대는 단순히 용인되는 정도를 넘어 환영받았다. 틀림없이 늑대가 먹이를 얻는 대가로 무언가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우정을 제공했을 것이다. -64쪽

빙하기 말 생태적인 대격변의 시대에 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와 몇몇 포식자가 멸종한 반면, 개, 닭, 소, 그리고 말은 살아남았다는 점 또한 인류와 이들 종이 상호 의존하는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현재 개는 5억 마리가 넘는 반면, 개의 친척인 늑대는 30만 마리에 불과하고, 닭의 조상인 붉은산닭의 개체수는 2백억 마리라는 닭의 압도적 개체수에 훨씬 못 미친다. 소의 조상인 오록스는 멸종했지만, 소는 전 세계 약 15억 마리가 존재한다.
로버츠는 이 책에서 말도 표정을 지을 뿐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인식할 수 있음을 밝힌 최신 연구를 소개한다. 말들에게 화난 표정, 찡그린 표정,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웃는 얼굴에 비해 화난 얼굴을 볼 때 말의 심박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인간이 더 멀리 이동하기 위해 말을 길들인 것은 맞지만, 개와 마찬가지로 말의 인간 친화적 성향은 인간이 말을 조력자로 선택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바뀐 것은 우리가 길들인 종들만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를 바꾸었다. 이 각각의 동맹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일부는 퇴비 더미에 떨어져 새로운 나무로 성장한 사과 씨처럼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일부는 다른 종 쪽에서 부추겼을 것이다. 늑대가 개로 길들여진 경우, 늑대 쪽에서 먼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쪽에서 더 의도적으로 접근한 경우도 있었다. 말과 소를 잡아 길들인 일은 확실히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동맹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각 동맹은 생태적 공생 관계로 발전했다. 일종의 공진화 실험이었던 셈이다. 결국 길들임은 쌍방 과정이다. -516~517쪽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와 인간의 관계도 무척 흥미롭다. 소는 신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치며 계속 작아졌는데 이는 양, 염소, 돼지 등과 비교했을 때도 눈에 띄는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농업이 시작된 무렵인 약 7500년 전 소뼈와 그로부터 3천 년 뒤의 소뼈 크기를 비교했는데, 후자가 무려 3분의 1가량 더 작았다. 소는 왜 점점 작아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목축의 초점이 고기 생산으로 옮겨 왔고 인간이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소가 채 성숙하기 전에 또는 성숙하자마자 도축했기’ 때문이다. ‘작아진 소’를 두고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저자는 중유럽의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고대 소뼈에서 단서를 찾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뼈의 크기가 작아질 뿐 아니라 어린 소의 개체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 작고 가벼운 송아지는 더 작고 가벼운 소로 자랐’다.

번식할 수는 있으나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암소들은 무리 내의 성숙한 자매들에 비해 체중이 적게 나가는 송아지를 낳는 경향이 있다. 더 작고 가벼운 송아지는 더 작고 가벼운 소로 자란다. 이는 유럽의 신석기 소떼에서 젖을 짜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고기가 최우선 목적이 되면서 유럽의 소가 신석기 초보다 신석기 말에 33퍼센트가량 작아졌다는 뜻이다. 전반적으로 소는 중세까지 계속 작아졌고, 몸집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다시 커졌을 때도 웅장하기 그지없는 야생의 오록스 조상만큼은 되지 못했다. -179~180쪽

여기까지 보면 인간이 소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킨 것 같지만, 소를 길들임으로써 인간의 DNA 역시 바뀌었다. 바로 우유를 소화시키는 능력이다. 원래 포유류는 성체가 되면 유당인 젖당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는데 이는 필수 효소인 ‘락타아제’를 체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소를 키우고 우유를 먹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개조’되었다. 젖당 내성 유전자를 생산하게끔 진화한 것이다. 기원전 6000년대 폴란드 토기 조각에서는 치즈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우유의 젖당 함량을 낮추기 위해 우유를 발효해 치즈로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동맹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각 동맹은 생태적 공생 관계로 발전한, 일종의 공진화 실험이었으며 결국 길들임은 쌍방 과정”이라는 것을 방대한 자료 수집과 탄탄한 논리로 입증해나간다.


야생의 먹을거리에서 기르는 먹을거리로,
생존과 번성을 위해 스스로 길을 택한 식물들

야생의 먹을거리에서 기르는 먹을거리로 변화한 식물들의 기원과 확산 과정을 보면 길들임에 있어서 인류가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밀’과 ‘사과’가 대표적이다. 야생의 보잘것없던 풀인 밀이 어떻게 인간의 눈에 띄어 전 세계적 작물이 되었는지는 오랜 미스터리였다. 야생형의 이삭 가지는 잘 부러지는데다가, 씨가 작은 이삭에서 떨어져 바람에 흩날린다. 야생풀이라면 이런 형질이 씨를 흩뿌리는데 유리하겠지만, 재배종이라면 심각하게 불리한 형질이 된다. 식물학자와 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 신석기 농부들이 낟알을 떨어뜨리지 않는 밀의 단단한 이삭 가지와 큰 낟알 크기를 선호했기 때문에 밀은 점점 인간에게 선택되기 좋은 형질로 진화되었다는 가설을 세웠다. 마침 1만 2천여 년 전 빙하기 이후 세계가 따뜻해지면서 인구가 불어나는 먹을 것이 많이 필요했다. 저자는 신석기 농업이 발전하게 된 이 과정을 두고 “농업이 먼저가 아니라 사회 변화가 먼저였다”라며 사회 발전을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곡물에 점점 더 의존하고 경작을 시작하면서부터, 단단한 이삭 가지 형질은 고대 밀 속으로 약 3천 년에 걸쳐 느리지만 확실하게 퍼져나갔다. 레반트 지방의 몇몇 유적들을 보면, 1만 1천 년 전까지는 낟알을 떨어뜨리지 않는 비탈립성 일립계밀 또는 엠머밀의 비율이 낮게 나타난다. 하지만 9000년경부터는 많은 유적에서 비탈립성 밀 품종이 약 1백 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형질이 고대 재배 작물 개체군에서 표준이 되었다는 증거다. - 109쪽

성경과 동화에서 유혹의 상징으로, 유명 기업의 로고로도 쓰이는 사과는 단언컨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과일 중 하나일 것이다. 맥, 갈라, 암브로시아, 골든 딜리셔스 등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품종의 사과를 재배하지만, 사과의 고향은 중앙아시아다. 중앙아시아 산맥에서 기원한 사과가 진출한 데는 사과의 전략, 그리고 곰, 멧돼지의 기여가 크다. 사과 열매는 야생의 꽃사과 열매에 비해 훨씬 크다. 로버츠는 사과가 큰 열매를 맺음으로써, 곰이나 멧돼지 같은 포유류를 유인했고, 씹어 먹으면 씨가 노출되어 밭에서 발아되기 유리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맛이 신 꽃사과에 비해 사과는 점점 달아졌는데, 이는 곰과 멧돼지가 사과 열매를 따먹도록, 스스로 맛의 진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덤으로 스텝 유목민들이 말의 안장에 사과를 넣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사과는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곰의 항문에서 나온 사과 씨는, 말하자면 비옥한 두엄 더미에 실려 숲 바닥에 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곰 배설물이라는 비료가 있다고 감안해도, 숲 바닥은 싹을 틔우는 데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다. 다행히 숲속에는 사과 씨를 파묻어줄 다른 대형 포유류가 존재한다. 멧돼지는 흙을 헤집고 휘젓는 위대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씨가 성공적으로 발아할 확률을 높인다. 하지만, 갈색곰(그리고 멧돼지)이 중앙아시아의 숲에 사과 씨를 퍼뜨리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해도, 이 과일이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마침내 전 세계로 흩어지도록 촉진한 것은 인간과 그들의 말이었다. -446쪽


호모 사피엔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자신을 길들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종들을 포함해 사실 많은 동식물이 ‘잡종’이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로버츠는 현생인류가 수만 년 동안 대체로 아프리카 대륙에 살다가, 약 10만 년 전~5만 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세계의 나머지 지역들로 퍼져나갔으며, 네안데르탈인과는 약 5만~6만 5천 년 전에 교잡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말한다. 데니소바인과 다른 구인류 종과의 교잡했다는 유전자 연구 결과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 현대 유럽인 열 명 중 일곱 명은 네안데르탈인 기원의 주근깨 관련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터키에서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HLA 유전자로 인해 250명 중 한 명꼴로 ‘베체트병’이라는 염증성 질환에 걸린다고 한다. 현생인류가 확산하고 교잡한 흔적이 현대인의 DNA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인류는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나 보노보에 비하면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 덜 적대적이다. 로버츠는 이 책에서 인류가 관용적이고 사회적인 동물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길들였다”고 밝힌다. 즉 인간이 다른 종에 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게, 친밀하고 덜 공격적인 성향과 외모로 스스로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가축화 증후군’이라 부른다. 길들여진 은여우의 털 색깔이 변하는 것과 같이, 동물이 길들여졌을 때 등장한 형질들 중 일부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 조상보다 눈썹 위 뼈가 덜 튀어나왔고, 전반적으로 덜 우락부락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저는 ‘테스토스테론’의 감소가 인간의 외모를 부드럽게 변화시켰고, 인간의 공격성 감소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생존과 번성을 위해 먼저 스스로를 길들이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공격성이 적은 남성들이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면, 그 형질이 집단 내로 빠르게 퍼질 것이다. 인간 사회가 진화함에 따라,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더 조밀하게 살기 되고 나아가 생존을 위해 광범위한 관계망에 의존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의도하지 않게-우리 자신을 길들였을 것이다. - 521쪽


야생도, 길들여진 세계도 모두 생명의 터전
미래를 위해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가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다. 현재 전 세계 70억 인구, 2백억의 가축이 있으며 전 세계 3분의 1의 작물이 그 동물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로버츠는 인간과 인간의 협력자 종이 행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식품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육식을 그만두는 일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버츠는 이 책에서 저소득 국가 국민의 비타민 A 결핍 해결을 목표로 개발된 유전자 변형 쌀인 ‘황금쌀’, 아프리카 쌀과 아시아 쌀의 잡종인 NERICA,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닭이 더운 지방에서 질병 저항성을 높이도록 하는 시도 등을 소개하면서 유전자 변형 작물의 이점과 위험을 신중하게 비교,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종이 항상 변하고, ‘종의 경계’를 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윤리적 검토도 필요하지만, 그 일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를 반드시 따져야 하며, 식량을 생산하고 먹는 지역의 농부와 주민이 올바른 정보에 입각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눈을 돌려, 야생의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면 오히려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기로 한 종들이 훨씬 많다. 우리도, 우리가 길들인 종도 원래 ‘야생’이었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야생’ 친척과 교잡했다. 저자는 길들여진 세계와 야생의 세계가 이어져 있음을, 야생을 가꾸는 것이 우리에게 직면한 과제임을 겸손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전한다.

현재 우리는 모든 곳에 산다. 그리고 우리가 길들인 종들도 우리와 더불어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우리가 길들인 종의 진화적 성공이 우리에게 달려 있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파종하거나 접붙이거나 교배하거나 굴레를 씌우지 않은 다른 종들의 성공 또한, 그들이 우리와 우리가 길들인 종의 영향을 받는 세계에서 얼마나 잘 생존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협력하게 된 종들만을 돌봐서는 안 된다. 어느 때보다 더,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을 가꿀 필요가 있다. 자연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리를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상호관계를 받아들이는 방법, 야생과 싸우는 대신 더불어 번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번 세기의 과제가 아닐까? -546~5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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