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도 이브도 없는
『살인자의 건강법』과 『적의 화장법』의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작가로서의 소명이 싹튼 기원의 땅, 첫사랑이 깃든 일본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스무 살 일본인 청년 린리와 나눈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프랑스적인 사랑의 감정과 다른, 철저히 규범화되어 있는 일본 사회의 연애 코드들을 해부한다. 곳곳에 배치된 패러디와 문화적, 언어적 차이에 착안한 유머가 돋보이고, 아멜리 노통브가 쓴 작품 중에선 드물게도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이가 없는’ 깔끔한 소설이다.
스무 살 일본인 청년 린리의 사랑(愛)과 스물한 살 벨기에인 아멜리의 사랑(戀)은 미묘하게 다르다. 하코네 호수 뱃놀이, 후지산 등반, 히로시마 요리 여행, 사도섬에서의 청혼... 린리의 청혼은 일본 기업에 입사해 갖은 굴욕을 당하던 아멜리에게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철저히 규범화되어 있는 일본 연인들의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과연 행복할까?
벨기에 외교관인 아버지를 두어 일본에서 태어났고, 아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개인적 이력과 이 작품은 단단히 밀착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회사 입사 후 겪은 엄청난 좌절과 스트레스, 결혼을 재촉하는 연인에게서 달아나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서 글쓰기와 자유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던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첫 소설을 낸지 16년 만에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가 내밀한 속내를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이 소설의 매력은, 동시에 작가와 우리를 더욱 친밀한 인연의 끈으로 묶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