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머리를 비우는 시간

머리를 비우는 시간

저자
다츠노 카즈오
출판사
도서출판 좋은책만들기
출판일
2011-06-28
등록일
2012-05-1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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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인들은 근대화와 도시화, 고속화로 편리하게 살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조용히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평온한 공간과 시간을 잃어버렸고, 늘 시간에 쫓기는 긴장된 삶 속에서 이윤이나 효율, 경영이나 부귀영화, 스피드 같은 것에만 집착한 채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9세기에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조급하게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고 있는가?”라고 일갈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그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조급한 종종걸음으로 소중한 시간을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일본 직장인들의 꾸준한 호응으로 스테디셀러에 오른『머리를 비우는 시간』의 저자는 이렇듯 스트레스에 찌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불행한 현대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물론 요즘같이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에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 웬 헛소리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특히 직장을 잃어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혹은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유지하려면 한시도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무슨 팔자 좋은 소리를 하는 거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사 퇴직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산속에 ‘나태암’(懶怠庵)이라는 쉼터를 마련해 종종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저자는 오늘날처럼 바쁘고 힘겨운 세상일수록 광속(光速)의 스피드를 늦추고, 물질적인 부와 성공에 대한 탐욕도 버리고, 노동시간도 줄여보자고 권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산책도 하고, 남몰래 몽상에도 잠겨보고, 뜨거운 온천물에 몸도 담가보고,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도 가져보고,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기쁨도 느껴보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물론 숨돌릴 겨를조차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조차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삶을 찬찬히 음미하고 즐기는 시간은 결코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다. 매 순간 숨통을 죄어오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속 케케묵은 것을 뱉어내고 신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심호흡’과도 같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우리에게 번데기 시기와도 같이 중요한 시간이다. 나비가 유충에서 날개가 돋아 화려한 모습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는 조용히 명상하는 것 같은 긴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듯이, 우리도 머리를 비우고 고요히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져야만 내면의 생명력과 야성, 창조의 힘을 키울 수 있다. 멍하니 있으면 마음속에 여유와 넉넉함, 여백이 만들어진다. 마음속에 여유와 넉넉함과 여백이 만들어지면 지금 이 순간과 내일을 살아가는 삶의 활력도 샘솟게 된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요점은 ‘오늘’이라는 날, ‘지금’이라는 시간을 느긋하고 평온하게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하루에 몇 번이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30분, 아니, 3분이라도 좋다. 창가에 앉거나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서 멍-하니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때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이나 숲, 강이나 바다를 찾아가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즐겨보자. 이 시간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귀중한 삶의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숲에 간 것은 사려깊게 살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만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쳐주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을 때가 돼서야 진정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처지는 되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정말 쓸데없는 시간일까?



미하엘 엔데의 걸작『모모』의 주인공은 ‘머리를 비우는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소녀였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모모는 마을사람들의 호의로 낡은 원형극장터 한구석에 살면서 별을 바라보고 밤하늘이 뿜어내는 장엄하고도 고요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보내면서 모모는 티없이 맑은 눈을 가질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잿빛 신사들의 모략을 깨부술 수도 있었다.

한편 쓸데없는 시간을 절약해 시간저축은행에 넣으라는 잿빛 신사들의 꾐에 넘어간 마을사람들은 은행에 시간을 맡겼고, 잿빛 신사들은 마을사람들이 맡긴 이 시간들을 다 써버린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시간을 절약해 저축했고, 결국 그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 없이 조급하게만 흘러갔다. 마을사람들은 본디 여유롭고 즐겁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젠 잡담도, 놀이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시간도 다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 잘라냈고 잠자리에 들기 전 15분간 그날 일을 반성하는 습관도 버렸다. 시간도둑에게 속은 사람들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신경질적이고 화난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고 눈빛도 날카로워져 갔다.



모모의 세계는 오늘날 직장인들이 기업이라는 괴물에게 자신의 삶을 저당잡힌 채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잘라내고 개인의 꿈과 휴식도 희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닮아 있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쓸데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한 이런 현상은 어디서나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모가 시간도둑들의 속임수를 눈치채고 그들과 싸워 마을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며, 모모가 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늘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정직한 삶의 방식’임을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슬프게도 오늘의 우리는 진지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습성을 잃어버렸지만, 쓸데없어 보이는 이런 시간들이 사실은 우리 삶을 더 풍부하고 충만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산책의 묘미와 숲속 생활



간소하고 자립적인 생활, 대자연과의 융화를 지향했던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8세 때 매사추세츠 주 월든 호반에 자기 힘으로 작은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고구마와 완두콩을 재배하고, 요리와 청소도 스스로 했다.

이 모든 일을 혼자 해내면서도 소로는 한가하게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하루 4시간 이상 산책을 했다. 1) 오랜 시간 걷는다 2) 속세에서 해방돼서 걷는다 3) 목적을 정하지 않고 걷는다 4) 야성이 넘치는 대자연 속을 걷는다는 4가지 원칙에 따른 소로의 ‘걷기’에는 생기가 넘쳐났다.

소로가 번화한 마을을 빠져나와 숲과 언덕, 초원을 한없이 걸은 것은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명력을 얻고, 대자연의 자양분을 듬뿍 받기 위해서였다. 죽을 때가 돼서야 진정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어리석은 짓은 원치 않는다고 말한 소로는 월든에서 참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고 삶의 기쁨을 발견했다. 즉 산책을 하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것은 그에게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천연보물’이었던 것이다.





자연 속으로 녹아들다



임제종(臨?宗)의 노승 야마다 무몬(山田無文)은 젊은시절 수행을 하던 중 결핵에 걸렸고 의사마저 치료할 방법이 없어 단념한 상태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줄곧 잠만 잤다. 당시 결핵은 중병이어서 마을사람들은 그의 집 앞을 피해다녔다. 그의 몸은 앙상하게 여위어갔고, 말상대를 해주는 사람 하나 없어 소외감에 빠진 그는 그저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러던 초여름 어느 날, 멍하니 앉아 정원 쪽을 보고 있노라니 시원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맡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정원 쪽으로 기어갔고, 문득 자신이 병으로 몸져누워 있는 동안에도 바람과 공기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힘으로 살아온 게 아니라 대자연의 힘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는 고마움에 그는 점점 마음이 밝아졌고, 신기하게도 날이 갈수록 건강이 좋아져 얼마 후 서서 걸을 수 있게 됐으며, 어느덧 병도 사라졌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엔 이런 강렬한 힘이 잠재돼 있다. 자기 힘으로는 설 수조차 없이 쇠약했던 몸이 정원에서 부는 맘씨 좋은 바람을 느끼는 동안에 어떤 깨달음을 얻고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물론 아무리 바람이 쾌적했다 한들 병을 비관하고, 조급해하고, 짜증을 내고, 절망했다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봐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멍하니 머리를 비운 사이에 말랑말랑해진 마음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병도 거뜬히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는 버몬드 주 산속에 아들이 지어준 18세기풍 농가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삼았다. 넓은 정원엔 꽃과 허브가 있고, 웰시 코르기개와 닭, 산양, 비둘기가 있었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타샤는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활동적인 타샤는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고, 산양의 우유를 짜고, 빵을 굽고 수프를 만들었으며, 장작을 패고 실을 만들고 천을 짜고 뜨개질을 했다. 하지만 타샤가 일만 하면서 지낸 것은 아니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한가롭게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아 카모마일 차를 마시면서 새 소리와 더불어 가슴 가득 행복함이 스며드는 귀중한 한때를 보냈고, 그러고 나면 노동에 지친 몸은 활력을 되찾고 다시금 일을 하고픈 의욕이 샘솟았다.



타샤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휴식을 통해 살아가는 힘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가마솥처럼 들끓는 도시에서 과다한 업무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사람이라도 틈틈이 조용한 공간을 찾아 잠시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살아가는 힘을 키우기 위한 적극적인 작업이다.





온천의 효능



온천 또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즐기기 위한 최고의 무대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온천을 좋아해서 온천에 관한 시를 썼고,『도련님』등의 소설과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온천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곤 했다. 그에게 온천에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던 것이다.

온천의 효능은 첫째, 피로가 풀린다.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일상의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둘째, 마음을 씻는다. 몸을 씻는 건 동시에 ‘마음을 씻는다’는 것이다.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들이 사라지면 내일은 좋은 일이 잔뜩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셋째, 야성이 되살아난다. 지중에 스며든 빗물이 지구 내부의 열로 뜨거워지면서 양분을 빨아들여 생긴 온천물 한 방울 한 방울에는 야성의 원초적 에너지가 숨어 있다. 또한 대지에서 솟아난 온천물은 알몸이 된 인간을 감싸며 그 내면에 깃든 야성을 되살아나게 해준다. 넷째, 자연 속에 몸을 담근다. 온천물의 질도 중요하지만 온천을 둘러싸고 있는 숲과 골짜기, 바다 같은 자연경관도 중요한 효능이다. 넘칠 듯 흘러내리는 물속에서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몸은 대자연을 느낀다.





하루 4시간 노동의 꿈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에세이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가함’이라고 말했다. 노동이 신성하고 훌륭하다는 사상은 지배자와 부유층이 만들어낸 것이며, 타인의 노동 덕분에 많은 여유시간을 누리게 된 특권계층은 그 쾌적한 여유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일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세뇌시켰다는 것이다.

러셀은 그 여유를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노동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가로운 시간이 생기면 사람들은 낡아빠진 신경과 피로, 소화불량 대신 삶의 행복과 환희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짓눌러대는 스트레스에서 놓여나면 보다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과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그 분야를 추구해 가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회화의 길에 정진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친절해질 것이다. 얼굴을 붉히고 핏대를 세우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도 없어지고 공연히 심술을 부리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적어질 것이며, 남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전쟁을 하려는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실업과 장시간 노동,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자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본들 구직자나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 소외감과 절망감으로 우울한 사람들에겐 들릴 리가 없다.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잠시나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데도 말이다.





‘비움’은 곧 ‘채움’이다



오늘날 효율지상주의자들은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쓸데없다고 말한다. 그런 쓸데없는 시간을 모아봐야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어리석은 짓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은 우리 삶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하고, 노을이나 구름, 별을 바라보고, 새 소리며 벌레의 울음 소리,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이런 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멍하니 앉아 머리를 비우면 우리 마음은 바람이 없는 날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바람결에 스치는 꽃과 잎의 향기를 골라낼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해진다. 거기에는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 그리고 한 마리의 새와 벌레와 고요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자연과 융화되는 감상이 있다.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며, 몸속에서는 신선한 생명력이 자라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내면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힘,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려는 힘이 샘솟는다. 비관적이 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 따위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더 많은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순간을 느끼고 싶어지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적극적인 마음도 강해진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곧 우리 삶을 충만하게 채우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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