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릿골 신화
1950년대의 현실에 토대를 둔 문제작을 지속적으로 발표한 선우휘의 소설들이 우리 문학사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이 시기, 즉 단지 6,25 전쟁 당시 뿐만 아니라 그 전후를 망라해 전쟁의 비극상을 미학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즉 좌우 이데올로기가 정면으로 충돌했던 급변하는 역사 속에서도 지식인으로서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던 그는 치열하게 행동하는 인간, 처절하게 고민하는 인간으로서 전쟁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 위기와 죽음에 처한 인간들의 비극상과 집단의 행동양식 및 전쟁의 형상화를 탐구하고 모색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5년 전에 월북했던 첩보장교 윤호가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다. 친구 이추봉 대령을 만난 윤호는 자신이 월북했던 것은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하며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명령을 내렸던 홍소장은 교통사고로 사망해 이 사실을 증명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윤호는 김준장이라는 인물의 정치적 모략에 의해 그런 사실들이 모두 은폐되고 자신이 그 모략의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신념으로 아내를 죽게 하고 사랑하는 아이마저 버렸던 윤호. 그는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모략에 굴복하여 김준장과 타협하기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평화로운 여생을 위해 마침내 거대한 음모와 맞서기로 결시만다. 그러나 아무 힘도 없는 윤호는 곧 한계에 부닥치고 마지막 카드를 던진다. 즉 김준장을 살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머저 김준장을 살해한 사람이 나타나고, 현장에 있었던 윤호는 체포되나, 곧 모든 누명이 벗겨지고 아들과 함께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찾는다.
1961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서 작가는 거대한 국가권력이 어떻게 한 인간을 소멸시키고 파멸시켜 가는지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무력하기 그지없는 한 개인이 스스로의 명예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 던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자세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이리라.
선우휘의 이 세 작품은 모두 21세기를 맞은 오늘날 6.25 전쟁을 새롭게 되새기게 해줄 뿐 아니라,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삶이 무엇이고 인간이란 진정으로 무엇인가 숙고하게 해주는 수작(秀作)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신의를 가지고 있다. 타인을 도우려 하고, 비밀을 지켜준다. 그런데 자시에게 피해가 돌아가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이 되면 돌변하는게 또 인간인 것 같다. 그래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는 것일까?
요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로비 관련 사건도 이런 예 중 하나인 것 같다. 좋을 때는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싶어 안달하다가도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금세 돌변해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쉽게 내던져버린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