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 일세
향기로운 꽃, 경봉 큰스님의 성찰과 깨달음의 일기
경봉 큰스님은 1953년 11월 통도사 극락호국선원極樂護國禪院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입적하던 날까지 이곳에서 설법과 선문답으로 법을 구하러 찾아오는 불자들을 지도하고 전국의 선승들을 선풍禪風으로 선양하였다. 언제나 온화함과 자상함을 잃지 않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꾸밈없는 활달한 경지에서 소요자재逍遙自在하였으므로 항상 열려진 문호에는 구도자들이 가득하였다. 82세부터 시작한 극락암에서의 정기법회는 90세가 되는 노령에도 시자侍者의 부축을 받으며 계속 이어졌고 매 회마다 1,000여 명 이상의 대중들이 참여하였다. 또 18세부터 85세까지 70여 년간 중요한 일을 기록하였는데 이 일기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한국 불교 최근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일세』는 이 방대한 일기 중에서도 경봉스님의 선禪의 핵심만을 엮어냈다. 때문에 한평생을 구도求道와 참선禪을 위해 정진했던 고승의 고뇌와 방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마음의 행로를 시와 문답의 형식을 빌어 자연 친화적인 9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숱한 번민, 부질없는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집착과 마음의 독을 버리고 공空, 무심無心, 적寂(고요)의 자세를 견지하라는 고승의 내밀하고 그윽한 목소리가 세인의 가슴을 적신다. 특히 진정한 해탈은 깨달음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는 마음(무심無心), 발우에 티끌이 남으면 안 되듯이 마음을 깨끗이 비우면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에서 가슴을 탁 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경봉스님의 선문답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색의 여운을 주는 90여 컷의 풍부한 사진과 어우러진 글을 되새김질하며 읽다보면 꼭 대단한 진리와 깨우침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무심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법정스님의 위의 말은 이 책이 지닌 의미를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스님이 36세 때부터 91세로 입적하기까지 50여 년을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도를 기록하였고, 성해선사, 구하스님, 구옹스님, 서해담스님, 대은선사, 허몽초스님, 만공스님, 한용운스님, 해봉스님 등 한국 근·현대 불교계를 대표하는 스님들과의 선문답을 담아낸 것으로 그 어느 무엇도 흉내낼 수 없는 한국근대 불교의 증언이며 귀중한 자료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