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토마토
뛰어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련되고 절묘한 구성
『오피스텔 토마토』는 다양한 주제를 취급하면서 하나의 공통분모로서 모순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보다 나은 세계를 추구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날아오르려는 욕망과 노력에 관한 것이고, 마지막은 노년(老年)의 생존방식 등과 같은 도덕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적지 않게 논의된 것이지만, 이것은 작가 정혜련의 세련된 소설 쓰기, 즉 그의 독특한 소설 미학을 통해 낯설고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우리 앞에 대두되고 있다.
표제작인 「오피스텔 토마토」는 화자(話者)가 여성으로서 자아를 어떻게 추구하고 확대시키고 있는가를 의미심장하게 나타내고 있다. ‘나’가 가족들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그녀가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절대적 공간이다. 그녀는 여기서 타인인 남자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독립된 영역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궁을 아기 방으로 만들기를 꿈꾼다. 여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토마토’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을 전수하는 창조적인 작업을 이행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즘적인 주제의식은 작품 「트라이앵글과 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화자는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질식할 정도로 단절된 공간에서 창밖의 우편함만을 바라보며 외롭게 살아간다. 정혜련은 여기서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을 보이며 여자를 폭력으로 소유하려는 남자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고발하고 여성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한편, 인간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여성의 책임을 확인하고 있다.
정혜련을 소설가로 만든 데뷔작 「연 날리는 아이」는 잘 끌질한 탁월한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연(鳶)날리기’라는 탁월한 은유를 통해 부각시키는 데 크게 성공하고 있다.
「당신의 증거」 역시 일종의 페미니즘 정신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자식들이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를 노후에 모시는 윤리적인 문제와 부모가 자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희생하는 문제를 화자(話者)의 딸아이인 민아가 데려다 키우는 햄스터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비유하면서 리얼하게 묘사한 것은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 크게 돋보인다. 햄스터의 삶과 죽음을 어머니의 그것과 비유한 것은 이 작품이 가져다주는 감동의 밀도를 크게 강화시켜주고 있음은 물론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자들을 감상적인 늪에서 구해주고 있다.
「컴퓨터가 있는 집」은 지식산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인 문제를 리얼하게 탐색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실존적인 인간의 독립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