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파워
초국적 법인체의 은폐된 권력 VS 민중의 억눌린 권력
체제변동을 이끌어내는 시민사회의 힘
이 책《히든 파워》는 ‘미국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것에 대한 더버 교수의 답은 두 종류의 은폐된 권력이다. 은폐된 권력이란 나라를 실제로 좌지우지하며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은 은폐되어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지배자인 민중의 권력 또한 지배세력의 네트워크에 억눌려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책의 목적은 은폐되어 있으나 대중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며, 억눌려 있는 민중의 권력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더버 교수는 미국의 현 지배체제를 법인체 체제로 파악하고 있다. 법인체 체제는 법인체와 국가의 결합관계를 말한다. 다국적 법인체들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정치엘리트들을 통해 정부를 통제한다. 이 결합관계에서는 법인체들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며, 이로 인한 폐해는 비단 미국뿐만이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또 하나의 은폐된 권력인 민중의 첫 번째 도전과 과제는 이러한 ‘법인체들의 지배’를 해체하는 것이다.
더버 교수는 미국의 지배체제를 코포크라시corpocracy로 규정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전 지구적 규모로 성장한 법인체corporation들의 네트워크가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에 포섭된 정객들, 군부, 대중매체 등이 네트워크의 대변자로서 법인체들의 정치적 이해를 실현하는 집행위원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은 자신의 고유하고도 정교한 신화와 명료한 선동체계로 대중 속에서 지배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버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의 과제는 은폐된 권력을 분석하고 그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은폐된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체제변동을 만들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투쟁”이라고 밝히며, 시민사회야말로 법인체의 지배에서 민주주의를 구하는 중심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는 왜 항상 중도층 공략에 실패하는가
대선 패배의 본질은 바로‘선거의 덫’
더버 교수에 따르면, 일반 대중은 은폐된 지배 체제를 건국이념 속에 녹아있는 자유와 해방의 민주주의와 혼동하고 있다. 그리고 민중들이 대안적 체제를 모색하기 힘든 이유는 법인체에 포섭된 정부와 대중매체가 대중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오도된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선거의 덫the Election Trap.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권력변동과 체제변동으로 착각함으로써, 선거가 정치투쟁의 1차적인 목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2004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실패한 이유를 코포크라시의 집행자로 기능하는 공화당을 단지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민주당 고유의 뉴딜적 전통에 입각한 의제를 개발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중도층 공략에도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대통합민주신당 김형주 의원은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은폐된 권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민주파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아직 수구세력과 재벌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에게 있고 이들이 전국적인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들과 시민사회의 권력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책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번 대선에 임해야 하는가, 아울러 새로운 정당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가 고민하는 수많은 개혁적 활동가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책을 국내에 소개하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