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침묵의 언어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한평생 사셨는데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할 말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위의 일화는 2003년에 입적하신 서암 스님의 임종게, 즉 열반송(涅槃頌)이다. 큰스님들이 열반에 들기 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우리는 열반송이라 부른다. 열반송은 대부분 한시의 형태이지만, 앞서 살펴본 서암 스님의 열반송처럼 형식적인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열반이란, 수행을 통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를 얻고 해탈한 최고의 경지를 일컫는다. 때문에 불교의 수행자들은 열반이라는 죽음을 앞두고 이를 맞이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스님들은 이렇듯 죽음의 순간을 열반송이라는 기쁨의 노래로 바꾸어 부르며 그들의 세속의 먼지가 쌓인 이생의 삶을 마무리했다.
열반송은 정적과 같았던 삶의 끝에서 외치는 생의 노래이자, 세상 끝에서 홀로 읊는 시 한 자락이다. 스님들이 속박과 번뇌, 미망과 아집에서 벗어난 적멸의 순간에 직접 전하는 마지막 한마디이기 때문에, 선승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처음으로 내뱉는 화려하고 비유적인 오도송(悟道頌)과 비교해 보면 무척 소박하고 담담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짧은 열반송을 통해 치열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선승들의 삶의 흔적과 선(禪)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이 선의 세계에는 만남, 이별, 고독, 명상, 영혼, 침묵, 진리, 귀향이 담겨 있으며, 바람, 별, 달, 해, 구름, 비, 나무, 바위 등 자연의 삼라만상이 펼쳐져 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대 선승 65인의 열반송을 담았다. 이러한 열반송과 더불어 선승들이 펼친 화두와 촌철살인과도 같은 일화, 그들의 걸어온 길을 사진작가 이상엽의 사진과 함께 묶었다. 짧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서는 스님들의 열반송을 하나씩 곱씹어 보며 누구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 열반송,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침묵의 언어
경허 성우 鏡虛 惺牛 - 마음 속의 달을 찾아서
퇴옹 성철 退翁 性澈 - 푸른 산에 걸렸도다
무주 청화 無住 淸華 - 이 세상 저 세상
숭산 행원 崇山 行願 - 만고광명이요, 청산유수라
경성 일선 敬聖 一禪 - 눈앞의 꽃이어라
나옹 혜근 懶翁 慧勤 - 모든 것은 본래 내 고향
고한 희언 孤閑 熙彦 -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백운 경한 白雲 景閑 - 모두가 내가 가는 길
동고 문성 東皐 汶星 - 참다운 것을 찾아서
인곡 법장 仁谷 法長 - 넘치지도 비어지지도 않는 바랑
삼광 비룡 三光 飛龍 - 도인의 삶
청허 휴정 淸虛 休靜 - 하늘과 땅이 갈라지네
서암 홍근 西庵 鴻根 -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으니
석우 보화 石友 普化 - 한줄기 종소리 떨어지니
월저 도안 月渚 道安 - 본래 없나니
원허 인홍 圓虛 仁弘 - 둥근 달 밝을 뿐이네
춘성 춘성 春性 春城 - 붉은 화로 속에 한 송이 눈
고봉 혜웅 高峰 慧雄 - 가야산 높은 봉우리
구산 수련 九山 水蓮 - 미소 지으며 가노라
남산 정일 南山 正日 - 창문을 열어보아라
고암 상언 古庵 祥彦 - 허공을 비추는 달
동산 혜일 東山 慧日 - 삼만육천 일
금하 광덕 金河 光德 - 그의 소리 영원하리
혜은 법홍 慧隱 法弘 - 마음과 생각 본래대로 비우다
부휴 선수 浮休 善修 - 껍질을 벗고 돌아가네
원각 상월 圓覺 上月 - 나고 죽는 것은 본래 없으니
향엄 설산 香嚴 雪山 - 오늘에야 알았네
이목 서운 二木 瑞雲 - 진리의 몸
용성 진종 龍城 辰鍾 - 만법이 다 고요하도다
서옹 상순 西翁 尙純 -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네
성림 월산 聖林 月山 - 본래 그 자리
노천 월하 老天 月下 -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동곡 일타 東谷 日陀 -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려니
정행 보월 寶月 淨行 - 이와 같이 오고 가는 것
태고 보우 太古 普遇 - 서산에 떨어지는 붉은 해
진공 탄성 眞空 呑星 - 평생을 살리라
혜암 현문 慧庵 玄門 - 천하를 가로지르네
혜월 혜명 慧月 慧明 - 견성이란 무엇인가
경하 재영 景霞 載英 - 외로운 달처럼 홀로 비칠 뿐
남곡 덕명 南谷 德明 - 껍질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흥덕 덕암 興德 德菴 - 붉은 해는 서천을 비춘다
괄허 취여 括虛 取如 - 환 가운데 환이 아닌 것
동계 경일 東溪 敬一 - 지혜의 눈
벽안 법인 碧眼 法印 - 걸림 없이 길을 떠나다
석암 혜수 錫巖 慧秀 - 꿈 속에서 또 꿈을 말하다
벽파 동주 碧坡 東州 - 삶과 죽음도 이와 같다
설봉 회정 雪峰 懷淨 - 단지 하나의 허공일 뿐이라
벽하 대우 碧霞 大愚 - 고향으로 돌아가노라
보성 두석 寶城 斗石 - 멸도를 찾아서
연담 유일 蓮潭 有一 - 어찌 슬퍼하리오
회광 일각 廻光 壹覺 - 손등과 손바닥이라
영암 임성 映岩 任性 - 맑은 바람만 스스로 가고 온다
월암 정대 月庵 正大 - 죽음의 관문
자운 성우 慈雲 盛祐 - 달을 따라 스스로 가네
일우 종수 一愚 宗壽 - 한바탕 꿈이로다
정관 일선 靜觀 一禪 - 그대들은 깨달으소서
혜암 성관 慧菴 性觀 - 머물 바 없는 마음
풍담 의심 楓潭 義諶 - 생과 사는 바뀌지 않으니
해안 봉수 海眼 鳳秀 - 생사가 이르지 못하는 곳
함허 득통 涵虛 得通 - 서방극락이로세
혜림 향곡 惠林 香谷 - 한 걸음 나아가니
운경 기홍 雲鏡 基弘 - 대천세계 한 빛이로다
효봉 원명 曉峰 元明 - 일천 강에 비친 달
소요 태능 逍遙 太能 - 입으로 말하면 그 칼날 맞으리
혜춘 慧春 - 오늘 날씨가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