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출가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한국 불교에 귀의한 눈 푸른 선승들이 있다. 이들은 미국, 헝가리, 영국, 세르비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후에 한국 불교를 만나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내려놓음’이다. 상황과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손을 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적극적으로 뿌리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것과 원해서 한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간극이 있다. 이들은 국적, 지위, 명예, 돈 같은 세상의 모든 명리를 속세에 남겨 놓았다.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두고 온 것에 대해 후회나 미련은 없다. 오로지 깨달음을 향해 정진할 뿐이다. 과연 깨달음은 무엇이기에 모든 것을 버린 것일까. 어떤 길이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문화와 종교 그리고 육신의 옷까지 벗고 훌쩍 떠나버릴 만큼 사람을 잡아끄는 것일까. 용기 있게 걸어가는 벽안 선승의 뒷모습이 커다랗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그 길은 더욱 눈부시다.
전부를 버리고 하나를 얻는다
<벽안출가〉에는 총 일곱 분 스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계 4대 생불로 칭송 받으면서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린 숭산 스님의 유일한 전법제자 대봉 스님을 시작으로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한 무진 스님, 고국 헝가리에 한국식 사찰을 짓기 시작한 청안 스님과 청고 스님,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무상사 주지로 있는 무심 스님, 외국인 스님으로서는 최초로 율원과 강원을 졸업한 일조 스님, 한국 선원에서 수십 차례 안거에 든 오광 스님…….
이 스님들은 모두 각자의 인연에 따라 출가를 했다. 대봉 스님은 사회적 부조리에 반발해 미국 월남전 참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곧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던 중 숭산 스님을 만났다. 무진 스님은 대학에서 아동심리학의 거장 장 피아제를 사사할 정도로 뛰어난 재원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원명 스님을 만나 한국 불교가 어떤 것인지 묻게 됐고 ‘Everything is perfect’라는 말 한마디에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예민한 감수성의 청안 스님은 삶 뒤에 숨어 있는 비애를 알아차리고 숭산 스님을 만나 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출가했다. 청안 스님은 대학에서 우연히 대행 스님을 만나 ‘네 안을 찾아라’는 말에 지식으로 얻을 수 없는 어떤 경지를 목격했다. 무심 스님은 명문 보스턴 대에서 화학과를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모두 내려놓으라’는 숭산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 순간 그 말씀을 따랐다. 일조 스님은 도저히 한국 불교와 만날 수 없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나고 자랐지만 운명처럼 한국 불교를 찾아 왔다. 그리고 오광 스님은 온갖 수행법을 다 경험하고 다시 한국 불교로 돌아왔다.
살면서 용기를 내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흔치 않다. 간혹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일상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이 책은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서 하나를 얻는 역설을 말한다. 이런 행복한 책 읽기의 경험도 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