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의 남자
때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가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버스 속을 무심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한 마리의 파리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속도에 편승한 채 관성과 무관한 존재로 삶의 일회적인 시간들을 밀쳐내며 앞으로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제, 상실감 이전의 내 모습들은 까마득한 속도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십대를 소모한 대학의 기억들, 전투적인 철학들과 세계에 대한 턱없는 희망들…… 모두가 사라졌다.
나는 담배를 피워물고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담배를 두 개피 피우고 나서 커피집을 나섰다. 세 시 십오 분. 어쨌든 그녀를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그녀와 나는 이 시간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지나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어제 내게 전화를 하는 그 순간부터 그녀와 나는 강하게 접속된 것이다.
“25분 전이군요. 일어나실까요, 선생?”
사이보그가 전원이 들어온 기계처럼 갑자기 입을 열었다. 머릿속을 되도록 텅 비우고, 맥주를 따르고 입으로 가져가기를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반복하던 나는 움찔했다. 나는 상대방을 물끄러미 건너다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 천천히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내가 담배를 반쯤 피울 때까지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내가 카메라 가방과 수첩 따위를 챙겨 어깨에 메자, 그는 비로소 일어섰다. 목조바닥인지 의자인지, 혹은 그의 신체 일부에선지 무언가 어긋나는 삐걱임이 들렸다.
“……마지막으로 자던 날 말이오. 새벽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깨어보니까 발가벗은 채로 머리맡에 오똑 앉아 있지 않겠소.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는 거였어. 이제 당신한테 난 필요하지 않아. 당신은 잘 해나갈 거야. 난, 그냥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걔가 없어지고 나서 그 새벽일이 자꾸만 생각나더라구…… 젠장, 공연한 센치야.”
종교는 라면이지? 차암, 종교는 아편이지?…… 색꺄, 대답해. 이번에는 야구선수용 장갑을 낀 주먹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종교는 아편이지? ……흠, 이 새끼, 빨갱이 맞다, 맞어. 종교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나는 입 안에 쓴물을 가득 머금고 대답했다. 그으래? 좋아, 좋아. 그럼 우리가 누구냐? ……전경. 대답하고 나서 나는 쓴물을 뱉어냈다. 검붉은 덩어리가 섞여나왔다. 아니지, 아냐. 우리들은 하나님하고 동창이다. 따라해, 하나님의 동창……
“지독한 안개로군.” 말하면서 나는 그에게 담배를 건넸다.
“이제 선생의 일은 끝났소.”
사이보그는 담배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는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렇지 않아. 아직 한 가지……”
“방금 어르신네께서 운명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