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
우리는 안개를 헤치고 강으로 내려가 세수를 했다.
그리고 옷차림을 단정히 고친 후 마을로 나가 버스를 타고 북경으로 향했다.
한국 대사관에 도착한 것은 10시경.
외삼촌이 먼저 들어가 그곳의 동태를 파악한 후, 내가 들어갔다.
그때 나는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대사관 안에는 비자를 발급 받으러 온 10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뒷벽에 붙어있는 소파에 앉아 수첩을 펴놓고 메모를 했다.
'북조선 원자력 공업부 남천화학 연합기업소, 우라늄 폐수처리 직장 부직장장 김대호 망명 요청'
그리고는 수첩에서 종이를 ?어 두 겹으로 접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줄을 선 사람들의 맨 뒤에 가서 섰다.
- 1994년 4월 12일의 일기 중에서
여만철씨 가족과 동행했으나 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 연합기업소 우라늄 폐수처리 직장 부직장장.남포지구 수산 외화벌이 상무 등 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익명상태의 탈북자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저자가 이제서야 털어놓는 탈북기를 담은 책.
북한 당국의 두 차례 체포령과 중국 공안 당국의 수사령을 받고 두만강을 건너온 이후 남한에서 세일즈를 하고, 창녀의 몸종이 되는 등 저자의 처절했던 삶과 자기의 삶의 고독, 설움, 그리고 한을 글로써 표현, 북한을 떠나오기 1년 전인 1993년부터 1996년 7월까지 망향시인 김대호의 일기와 시를 수록했다.
이미 자전소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과 시집 『행복』을 출간하기도 했던 저자의 세번째 작품으로
귀순 동기가 된 인민무력부와 당 조직간의 세력다툼에다 아내와의 로맨스, 두 딸에 대한 사랑, 핵개발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를 외화벌이로 자체해결하라는 당국의 지시로 남포지구 수산 외화벌이 상무로 근무하던 중, 음모에 말려 탈출했지만 이후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광산촌에 유배됐다는 소식을 듣고 저자가 갖는 죄책감, 그로 인한 현실 부적응, 칩거와 탈선, 사기 당한 일 등 고단했던 저자의 삶을 두권으로 나누어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