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괴테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편 그러면서도 괴테의 작품을 쉽게 읽었다는 사람 또한 드물다. 『파우스트』는 특히. 작품의 난해함과는 달리 괴테의 생은 평범하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매우 부유한 상류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안정적인 가정에서 받은 철저한 교육이 뒷날 그가 이룬 위대한 문학의 바탕이 되었다고 후세 사람들은 말한다.
파우스트는 15∼16세기 독일에 실존하였던 인물로서 게오르크 파우스트 또는 요하네스 파우스트로 불리운다. 우리나라 사람이 연산군의 무의식을 추적하여 인간형을 분석적으로 제시하듯이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파우스트적 인간'처럼 독일인의 특질을 표현하는 개념으로도 쓰기도 한다. 괴테는 인형극을 통하여 알고 있었던 이 전설의 희곡화를 20세 때부터 계획했다. 그리고 그것을 완성한 때 그의 나이는 82세였다.
사람들은 『파우스트』를 괴테 전 생애의 대작이자 인류 문학사의 불후의 걸작으로 평가한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연구와 해석도 많고 무수한 논쟁이 따른다. '영혼이 구원되는 파우스트'의 예술적 형상화는 헤아릴 수 없는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한 문장 한 문장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 그 얼마나 될까.
저자소개
(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 최대의 시인이자 세계문학의 거장인 괴테(1749-1832)는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자연연구자,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던 괴테는 1768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며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 G. 헤르더를 알게 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괴테는 1774년 비련(悲戀)을 겪고나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써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치고,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괴테는 1775년에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 ·광물학을 비롯하여 해부학 등 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괴테는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에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수업하는 화가로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에그몬트 Egmont」(1787) 등을 썼다. 이후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으며 1794년부터 실러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Wilhelm Meisters Lehrjahre」, 서사시「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괴테는 그 무렵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을 특징으로 하는 문학활동을 펼쳤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파우스트」는 괴테가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 걸작의 하나이다. 괴테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