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나날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저 숫자 1에 불과한 비정함, 그것이 바로 전쟁의 본질이다!포탄이 빗발치는 참호 속에서 휘갈겨 쓴 병사의 일기처럼 생생한 1차 세계 대전의 실상작가는 독일과 그 역사를 사랑하는 역사학도로, 2017년에 출간한 첫 번째 소설 『프리츠:삶과 선택』에 이어 이번 책에서는 비극이 시작된 1차 대전 즈음의 독일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조금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정형화된 인간 군상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전쟁을 이끄는 것도, 특별히 폭력을 즐기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이들이다. 갑갑한 상황에서도 부하를 다독이는 지휘관 바이어 중위, 고향에 있는 여인을 위해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고자 발버둥 치는 한스, 전쟁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오토, 폭력의 향연에 취해 버린 스벤,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의 부조리함을 세상에 알리려는 하르트만 등 소설 속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누군가의 수기를 읽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무엇을 위해 전쟁이 일어났는지, 왜 인간이 더는 인간답지 않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다. 나아가 한 명, 한 명이 모여 거대한 역사를 이루고 발전시킨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잊지 말아야 나날의 기억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한 사람의 죽음이 그저 서류상의 숫자 ‘1’로 기록되고 마는 비극적인 현실. 그 앞에서 독자들은 우리가 왜 전쟁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왜 도덕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