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냉장고
“우리가 욕망을 채운 대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대형화 추세, 럭셔리 마케팅에 가려진 냉장고의 참모습?세탁기, 에어컨, 정수기 같은 전자제품은 자리를 덜 차지해야 사랑을 받는데 끊임없이 몸집 키우기 경쟁을 하는 가전제품이 있다. 바로 냉장고와 텔레비전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화면은 커도 점점 날씬해져서 차지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몸집 키우기의 최강자는 냉장고인 셈이다. 그렇다면 냉장고는 왜 자꾸만 커지는 것일까? 핵가족화, 저출산, 1인 가족의 비중이 나날이 늘어나는 가운데 냉장고의 용량이 자꾸 커진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 아닐까? ?《욕망하는 냉장고》는 이런 의문으로 시작된 책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대형마트, 대형구매로 이어지는 소비 패턴의 변화로 지목한다. 마트는 최대한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인간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한 배치와 색깔을 선택하고, ‘할인 판매’ 같은 단순한 문구보다 ‘한정 판매’, ‘오늘만 이 가격’, ‘1+1’ 등의 조건을 달아서 구매욕을 자극한다. 게다가 웬만큼 넣어서는 차지 않는 큰 쇼핑 카트는 또 어떤가. 천천히 쇼핑을 즐기도록 느린 박자의 음악까지 들려준다. 이 가운데 소비자는 살까 말까 갈등하다가 어차피 쓸 물건이니 쌀 때 사야지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문제는 싸게 잘 샀다는 생각은 한 번의 좋은 기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싸게 샀다는 생각은 횡재한 것 같은 쾌감을 주는데 그렇게 뇌리에 새겨진 쾌감은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그 쾌감을 계속 맛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대형마트를 찾게 되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횟수는 늘어나고 냉장고에 쟁여두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대형마트는 절반 가까운 숫자가 늘어났고, 냉장고는 600대에서 700으로, 또 800에서 900리터급으로 용량이 늘어나며 급속히 대형화의 길을 걸었다. 대량 소비! 그 레일의 끝에는 속이 터져나갈 듯이 꽉 찬 거대 냉장고가 버티고 서 있다.?《욕망하는 냉장고》는 이처럼 냉장고에 보관되는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건강, 질병, 과학기술, 경제적인 가치, 전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문제, 현대인의 욕망과 습관, 그 습관과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까지 담은 책이다. 냉장고는 어떻게 태어나고 우리 곁에 왔는지, 지금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각각의 개인에게는 어떤 존재로 머물고 있는지, 미래를 위해 진짜 가치 있는 냉장고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냉장고에 대한 문화인류학’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