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탕 옆 기억사진관
지금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이야기
서울의 경리단길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나요? 그렇다면 경주의 황리단길, 전주의 객리단길은요? 놀랍게도 이 ‘~리단길’이라는 명칭은 서울은 물론이고, 경주, 전주, 대구, 인천할 것 없이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서울에는 ‘~리단길’이라는 단어로 끝나는 지역이 벌써 몇 군데나 있을 정도이지요. ‘~리단길’은 요즘 말로 핫한 지역을 칭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주로 독특한 인테리어의 가게들과 유행하는 음식이나 디저트를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습니다.
그중 서울의 망리단길에는 주말이면 가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SNS에 올라오는 예쁜 음식들을 맛보고 싶어서 찾아간 사람들과 또 자신도 그 음식들을 사진으로 담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이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공사를 하는 곳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건물을 부수는 소리, 새로운 건물을 짓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될 정도이니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동네도 처음부터 ‘망리단길’이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지도 상에는 망리단길보다 더 예쁜 ‘포은로’라는 멀쩡한 이름도 있습니다. 옛 주소를 찾아보자니 ‘망원동’이라는 정감 가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이곳에 있던 가게들은 어떨까요?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건물 주인들이 무리하게 월세를 올리는 탓에 벌써부터 이에 버티지 못해 가게 문을 닫은 곳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수많은 새 건물들이 올라가고, 터줏대감처럼 동네를 지키고 있던 분식집, 사진관, 수선가게 등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박현숙 작가는 오늘날의 이런 현상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동화 『시원탕 옆 기억사진관』을 완성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이웃들의 삶을 기록하던 ‘기억사진관’과 많은 이들의 근심과 걱정을 녹여 주던 ‘시원탕’의 이야기로 어디에나 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동화로 담았습니다. 오래된 것의 가치와, 여럿의 삶이 녹아 있는 장소에 대한 가치는 그 무엇과도 쉽게 바꿔선 안 됩니다. 『시원탕 옆 기억사진관』을 통해 많은 어린이 친구들이 이 마을에 대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간직해 주었으면 합니다. 작은 구멍가게 앞에 매달려 있는 돼지 저금통, 부동산 앞 평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들, 문방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뽑기 기계들, 오래된 이발소의 핑크빛 가운, 목욕탕 카운터에서 할머니에게 건네받은 요구르트 한 병까지. 마음속에 언제까지고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마치 기억사진관 할아버지가 이웃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관했던 것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