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여행
쉬려고 떠났다 피로만 떠안고 돌아오는
여행자에게 건네는 작은 휴식
출근길에 질러버린 항공권. 항공권이 내 것이 된 순간 기나긴 여행 준비의 서막이 오른다. 수백 개의 해시태그를 뒤지며 맛집, 관광지, 쇼핑리스트를 빼곡하게 표로 정리한다. 여행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다니고 먹고 산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여행을 온 걸까. 미션 수행을 하러 온 걸까?”
『빼기의 여행』은 이런 고민에 빠진 여행자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 송은정은 방송작가로, 출판사와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틈만 나면 여행 가방을 쌌다. 여행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직장을 그만두고 ‘일단멈춤’이라는 여행책방을 차리기도 했다.
저자는 여행을 거듭하며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여행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극히 사소한 순간들이었음을. 길을 잃은 골목에서, 버스를 놓친 틈에 우연히 마주한 여행지의 풍경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많이 보고 느끼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낯선 시공간을 오롯이 즐기는 ‘빼기’의 마음이 아닐까.
야자수 아래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근사한 레스토랑 대신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컵라면을 먹는 순간. 그런 순간의 기억은 초콜릿처럼 강력해서 도시의 연이은 회의와 교통체증 사이에 하나씩 꺼내보면 기운이 났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은 “목적지에 닿기까지 가능한 한 우회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쉬려고 떠났다 피로만 떠안고 돌아오는 여행자에게 건네는 홀가분한 여행기이자, 여행을 닮은 가뿐한 일상의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