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20세기의 작가 카프카가 21세기에 던지는 슬픈 잠언
기존의 [브로트판]을 원본에 더욱 가깝게 되살린 [패슬리판] 완역본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성』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232번으로 출간되었다. 『성』은 카프카의 인생 말년에 집필되었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끝내 마무리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어기고 유고를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했다. 그 덕분에 『성』은 오늘날까지 불후의 걸작으로 전 세계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고에서 미완성의 느낌을 줄이고 가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편집을 진행한 탓에 그가 남긴 [브로트판]은 카프카의 원본 텍스트와 많이 다른 원고가 되었다. 이 책은 원본의 표현이 많이 훼손된 기존의 [브로트판]을 바로잡아 카프카 자신의 친필 원고에 최대한 가깝도록 새롭게 편집한 [패슬리판]을 완역한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주인공 K가 어느 마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외부인의 체류가 금지된 그곳에서 K는 자신이 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 잡은 성의 백작에게 토지 측량사로 임명되어 찾아온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는 여전히 긴장이 섞여 있고 성에서는 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K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미궁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 작품이 진행될수록 K의 말과 행동 또한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독자들은 성의 실체와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게 된다. 그 무엇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거대한 불확실함을 한 편의 정교한 소설로 빚어 낸 카프카의 치밀함은 『성』이 오늘날까지 세기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잡해서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함 속에 막강한 통제력까지 갖춘 사회(세계)의 괴물스러운 면모를 굳게 닫힌 성의 풍경에 비추어 넌지시 제시하는 이 소설은 그와 유사한 현재 21세기의 한 단면을 마치 20세기에 미리 예언이라도 한 듯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아무리 공고한 체계라 할지라도 K처럼 그 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가 왕왕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성공을 거두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성』을 써내려간 카프카의 진단이자 그의 죽음 이후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슬픈 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