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역도산
일본열도를 뒤흔든 비운의 영웅, 역도산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만난다!!
이 책 <<영웅 역도산>>은 마치 한 편의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긴장감 넘치는 묘사를 통해,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한 역도산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저자 이순일은 역도산의 출생지인 북한과 그가 활약했던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넘나들며 광범한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비극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이면서도 고독했던 한 인간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역도산의 출생에 관하여
일본에서 활약했던 조선인 레슬러 역도산, 본명이자 한국명인 김신락(金信洛)의 출생년도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역도산은 1924년 11월 24일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신풍리에서 김석태(金錫泰)와 그의 아내 전기(田己)의 3남3녀 가운데 여섯째인 3남으로 태어났다. 김신락의 어머니는 비록 여자임에도 기골이 장대하고 평생 한번도 앓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였고, 아버지는 지관이어서 산삼과 같은 귀한 약재를 자주 채집하여 자식들에게 먹였다. 그 덕분에 첫째 항락과 둘째 공락 셋째 신락은 어릴 때부터 모두 또래를 압도할 정도의 체력과 체격을 지닌 장사 집안이었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그러던 중 1938년 조선일보 주최 씨름대회에서 큰형 항락이 우승을 하고 김신락은 3등으로 입상을 한다. 이때 일본인 형사의 눈에 띄어 김신락을 일본행을 권유받았지만 아버님 병간호를 위해 가지 못하고 있다가 아버님 상을 치른 후 일본으로 떠난다. 1940년 그는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귀화한 뒤 스모계에 등장하여 승리를 거듭하며 성장하다가 1950년 오오제키(스모계의 2등급의 위치)를 눈앞에 두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당하자 스모를 그만둔다.
조선인 차별에 반대하여 스모를 그만두고 레슬링으로 전향하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프로레슬링에 눈을 뜨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챔피언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온다. 귀국 직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시합을 벌이며 타고난 운동신경과 천부적인 흥행감각으로 레슬링을 전국민의 인기스포츠로 만들고 동양타이틀과 세계타이틀을 획득해나간다. 아울러 일본의 유도영웅 기무라와의 시합을 벌여 그를 꺾고, 전설적인 레슬링 선수 루테즈와의 경기를 벌여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나아가 일본프로레슬링 협회를 창설하고 프로레슬링을 일본최대의 흥행스포츠로 활성화시켜 나가면서 패전의 충격과 상처 속에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있는 일본인들의 머리 위에 별로 떠오르면서 불세출의 영웅으로 자리잡는다.
의문에 싸인 영웅의 죽음
일본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1961년 북한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초청을 받기도 한다. 아울러 남한에서도 1963년 1월 8일에는 당시 문교부 장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프로레슬링 선수 개인으로서나, 갑부가 될 정도로 왕성한 사업을 진행시키던 사업가로서나, 그리고 한민족의 기개를 떨치던 애국자의 한 사람으로서나 정상의 자리에 있던 그는 1963년 12월 8일 도쿄의 술집에서 야쿠자 출신의 괴한에게 칼에 찔린다.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어 수술을 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상처는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지 며칠 지난 12월 15일 오후부터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2차 수술을 받던 역도산은 돌연 숨이 끊어지고 만다. 그때가 밤 9시 50분 경으로 만 40이 채 안되는 젊은 나이에 불세출의 영웅이 되었던 조선인 청년은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만다. 미스테리에 휩싸인 그의 사망원인을 두고 갖가지 추측은 분분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분단이라는 시간과 일본이라는 공간 위에서 일어난 비극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광범한 자료조사와 현장취재를 통해 일본에서 조선인 역도산이 겪었던 민족적 고뇌와 비애를 감동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북에도 남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일본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역도산의 생애를 통해, 분단민족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울러 저자는 일본열도를 뒤흔든 불세출의 영웅 조선인 김신락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도 그 죽음에 얽힌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분단되어버린 남북한의 현실 때문이라는 시대사적 비극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