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
1987년 민주항쟁의 깃발이 나부끼던 시청 앞 광장에 이제 보수세력의 물결이...
지금부터 20년 전 6월은 이른바 ‘민주항쟁’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1987년 6월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인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이어서 후계자의 애창곡 ‘베사메무초’가 울려 퍼진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른바 ‘6월 민주항쟁’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 24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6.10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렸다. 그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반독재 연합전선이 구축되어 6월 민주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는 대선을 치르는 87년 권력 이양기를 맞이해 독재정권에 총공세를 가했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합법적인 권력경쟁의 공간을 쟁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민주화세력은 호헌철폐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민주정부 수립에는 이르지 못한 ‘절반의 성공’을 하였다. 정통 야당과 재야 민주화세력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인 97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선거에 의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민주화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긴 보수우파는 진보좌파 혹은 민주개혁세력의 활동공간이었던 ‘광장’과 ‘아지트’ 그리고 ‘온라인’에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외치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수천 명, 수만 명 단위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는 2004년 10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대회에 30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시청 앞 광장이 아니라 인터넷 세상에도 보수세력의 위세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애국시민 30만 명의 10.4 의거’라고 부른 이날 행사를 주도한 것은 300여개 보수우익 단체가 참여한 ‘반핵반김국민협의회’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중동원의 중심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재향군인회 그리고 150여 개 단체의 참여, 후원단체로 구성된 ‘친북좌익 척결 국민행동본부’가 있었다. 이러한 보수세력의 위세는 서울 광화문과 시청 그리고 서울역의 ‘광장’만 접수한 것이 아니라 진보의 아지트였던 인터넷 공간마저 위협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인터넷 공간은 진보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2004년 초를 기점으로 보수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더니 <독립신문> <미래한국신문> <데일리안> 등에 이어 <뉴데일리> <프런티어 타임스> <폴리뉴스> <브레이크뉴스> <데일리NK> <프리존> <코나스>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보수 인터넷매체의 시장 점유율은 진보 인터넷매체보다 뒤지지만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와 한나라당의 상승 흐름을 타고 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2002년 대선 국면의 온라인 세상을 ‘노사모’가 지배했다면, 2007년의 온라인 세상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왜 지금 한국의 보수와 대화해야 하는가
조갑제 씨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이 ‘감별’한 ‘애국단체 주소모음’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공동목표를 지지하는 ‘애국단체’는 무려 443개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세력은 ‘행동하는 보수’를 자임하는 구보수세력과, 이들 ‘올드라이트’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보수우파의 부족한 컨텐츠를 채워주는 머리 역할을 하는 ‘뉴라이트’로 나뉜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올드라이트는 뉴라이트를 여전히 ‘빨갱이’ 취급하고 있으며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를 ‘꼴통보수’로 간주하고 있다. 심지어 올드라이트 내부에서조차도 서로의 반복으로 단일대오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보수우파는 2007년 올해 12월에 치러질 대선에서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국사회의 권력은 다시 보수세력의 품으로 넘어갈 것인가?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곳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들은 과연 올해 대선에서 그들의 목표를 이뤄낼 것인가? 지나온 민주정부 10년은 그 전 시기 10년의 산물이듯이 지금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고자 몸부림치는 보수세력의 노력은 이른바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든 못찾든 무언가의 결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결실을 이루려고 하는 그들의 생각은 무엇이고,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