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
37세 생일을 맞아 축하 파티가 한창이던 1786년 9월3일 새벽, 괴테는 간단히 여행 가방을 꾸려 훌쩍 이탈리아로 떠난다. 당시 문학적 명성과 부와 정치적 지위까지 모두 갖추고 있던 그가 서둘러 떠난 이탈리아 여행은 정치권에 몸을 담고 있던 10여 년 동안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이 점점 무뎌져간다는 심각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1년 9개월 동안 유럽인의 문명과 예술의 원천을 찾아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끽한다. 로마에 도착한 날을 자신의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까지 찬탄했을 정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자신의 인간적 성숙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의 발전 과정에서도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 이후 조화와 균형의 고전미에 눈을 뜨게 된 시기를 문학사에서는 '독일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일기와 편지, 보고문과 논술 등 다양한 형식의 글로 남겼는데 이 기록들은 1829년에 3부로 묶여져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완간되었다. 괴테의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이탈리아의 풍물과 예술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충실한 길잡이이자, 괴테의 삶과 자기 수양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주는 자서전의 한 단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소개
(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 최대의 시인이자 세계문학의 거장인 괴테(1749-1832)는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자연연구자,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던 괴테는 1768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며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 G. 헤르더를 알게 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괴테는 1774년 비련(悲戀)을 겪고나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써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치고,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괴테는 1775년에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 ·광물학을 비롯하여 해부학 등 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괴테는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에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수업하는 화가로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에그몬트 Egmont」(1787) 등을 썼다. 이후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으며 1794년부터 실러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Wilhelm Meisters Lehrjahre」, 서사시「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괴테는 그 무렵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을 특징으로 하는 문학활동을 펼쳤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파우스트」는 괴테가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 걸작의 하나이다. 괴테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