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사과
서양 중세경제사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소설의 화자는 소르본 대학 도서관 고(古)문헌실에서 우연히 바스커빌 출신의 프란체스코 회 수도사 윌리엄--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의 이름」의 바로 그 윌리엄--이 14세기 초에 쓴 서책의 채록 편집본을 발견한다. 서책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괴물 같은 일들에 관한 기록」은 영원의 도시이자 이단의 온상인 베르송의 피에르 주교로부터 급히 와달라는 서찰을 받고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윌리엄이 겪게 되는 살인, 실종, 식인, 흑사병, 그리고 이단 재판과 화형 등 무섭고도 기괴한 사건들의 기록이었다.
이야기는 윌리엄이 알프스를 넘어 베르송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윌리엄이 도착한 때는 마침 육식을 금하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곧 성회례일(聖灰禮日)이다. 윌리엄은 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지만 그 느낌의 실체는 쉽사리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토록 건강하던 피에르 주교의 사인이 심장마비였다는 것, 죽은 주교의 얼굴이 적어도 십 년은 늙어 보였다는 것, 주교의 사망 선고를 내린 의사와 시종의 실종, 일개 지방도시 주교의 장례를 위해 속권과 교권의 수장들이 베르송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 등등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요리 담당 제롬 사제의 알 수 없는 이야기들…… 그에게서 이단의 냄새를 맡으면서, 윌리엄은 자기 안에 숨겨진 불온과 독신(瀆神)의 싹을 발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