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 이순원 장편소설
이순원의 연작소설집!
1968년과 1998년까지, 10년마다의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눈과 램프와 여자가 있는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각 시대의 성의 사회사를 살펴볼 생각으로' 쓰여진 소설들이다.
작품 속에서 1인칭 화자가 만나는 여자들은 동네 청년들에게 윤간당한 노은집, 섬유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이 많은 일본인의 후처가 되고 10년 후 귀국해 나이트클럽의 마담이 된 기숙,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전전하던 중 윤간을 당하고 황폐해진 김윤희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 시대의 풍속과 상처를 드러내는 인물들!
화자는 그녀들의 아픔과 슬픔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램프를 들어 어두운 눈길을 가는 누이를 배웅하는 심정으로.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그의 목소리는 다분히 서정적이며,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글 속에 흐른다. 그리고 우리 가슴 속에 남는 것은 그 풍경 속에 담긴 순수의 이미지이다.
<순수>는 춥고 눈 쌓인 나라에서 방금 도착한 손수 만든 조각보다. 올올이 한숨 섞인, 질감 다른 헝겊 자투리가 아름다운 조각보가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조각보와 함께 부쳐 온 네 통의 편지는 읽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휘저어 놓는다. 밤새 몰래 내린 눈으로 눈 시린 아침, 당신은 누이의 손때 묻은 조각보를 두르고 서서 한기를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위로할 수 없었던 이 나라 직녀들의 도돌이표가 그려진 슬픈 운명을 이처럼 선뜻 손 내밀어 보듬어 준 글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순수`라는 조각보를 걸치는 순간 조각보에 밴 한숨이 저절로 입을 통해 나오게 하리라.
- 하성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