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속의 울음소리
천지에서 일어난 일
일제 시대가 되었을 때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만주로 피난 가면서, 겪은 고통스런 일들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 중에 추운 한겨울 피난 길에 독립운동가의 손부가 아기를 낳았다. 그 춥고 고통스러운 길에서 어른들이 아기를 번갈아 체온으로 안고 길을 갔다는 얘기는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였다. 입술까지 쩍쩍 얼어붙는 그 벌판에서 갓난 아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미래의 앞날을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시베리아 벌판의 찬 바람이 얼굴을 후려 갈기는 만주 벌판에서, 겪은 수많은 고통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 중에 감격스러운 일은, 그 추운 만주 벌판에서 벼농사 짓는 방법을 연구하여, 피난민들이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지혜를 후손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했다. 만주에 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할 때, 중국인의 화변기는 구멍이 하나 밖에 없었다. 오줌이 튀어서 옷을 적시게 하는데, 우리 조선인의 화변기는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소변과 대변이 떨어지는 곳이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위생적이었다. 중국인보다, 조선인이 머리가 좋다는 일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일제 시대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 가지 않아 6. 25 동란을 겪었다. 전쟁으로 인해 농토는 파괴 되고 집들도 부서져, 사람이 살기에 매우 곤란하게 된다. 그 어려운 중에도 한국인 중, 정신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은, 힘써 일해서 먹고 살 생각은 않고, 놀고 먹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낮에는 낮잠을 자고 밤이 되면 구석진 곳에 모여, 도박을 해서 놀고 먹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을 안 정신이 올바른 선비는, 그들의 버릇을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겨울에도 부지런히 농사지어, 가난을 면할 수 있는 비닐 하우스 농사를 지어 농촌도, 도시못지 않게 잘 살게 만들었다. 또한 학교에 가지 못하는 가난한 농촌 아이들을, 사랑방에 모아서 학비도 받지 않고,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같은 것을 가르쳐서, 나라의 일꾼으로 키우려고 노력했었다. 부지런한 농촌 사람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공부를 시켜, 나라의 훌륭한 알군으로 키웠다. 대한 만국을 희망이 싹트는 나라로 만드는데, 온 힘을 다 쏟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