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가락지꽃
가락지꽃은 전라도 제비꽃의 사투리입니다. 오랜 겨울 동안을 차고 무거운 땅속에서 꼼짝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예쁜 가락지꽃이 있었는데, 어느 때나 따뜻한 봄날이 돌아와서 '나도 한번 세상 구경을 하나'하고 몹시 봄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하루는 정말 푹신푹신한 햇볕이 땅을 녹이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와서, 봄이 왔나보다고 생각하고 가락지꽃은 뛰며 반가운 마음으로 오래 진저리나던 겨울 땅을 뚫고 고개를 반쯤 내밀어 보았다. 아직 사방에는 마른 풀들이 기운 없이 몸을 휘청거리고 있을 뿐이였다. 아직 봄이 이르구나 생각했지만 다시 땅속으로 들어갈 생각 없었다. 내가 먼저 피면 다들 따라 나와서 피겠지 생각하면 가락지꽃은 가만가만히 솟아나왔어요. 그런데, 이른 봄이라 하늘에 구름이 밉살맞게도 모여들며 어디서인지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아이고 큰일났다' 하고 어쩔 줄 모르는데 바람이 점점 더 불면서 눈 조각까지 날아와서 가락지꽃의 예쁜 얼굴은 추운 바람과 눈바람 때문에 얼굴이 찌그러지게 되어, 가락지꽃은 그만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온몸은 아프고 떨리면서 그만 정신을 잃고 눈을 감았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날이 따뜻해지고 정말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왔어요. 맨 처음 피었다가 얼어서 정신을 잃고 있던 가락지꽃도 어떻게 살아나서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방실방실 웃으면 사방을 둘러 보았는데...가락지꽃 앞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죽지를 벌린 채 얼어 죽어 있었어요. 가락지꽃은 나비 덕분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가락지꽃은 불쌍히 죽은 흰나비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뜨거운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흘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