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6가지 환경 전염병
현재 지구에는 2008년 한국 사회를 공포로 들끓게 한 광우병뿐만 아니라 에이즈, 사스, 조류 인플루엔자, 라임병, 코로나19 등 수십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병들이 출현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질병 앞에 인류는 단지 희생자일 뿐일까? 이 책은 인간이야말로 지구 환경과 자연의 순환 과정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질병을 불러들인 주범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개입으로 인한 생태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새로운 질병을 ‘에코데믹ecodemic’이라고 부르며, 6가지 전염병의 예를 통해 인간이 자연에 일으킨 변화와 재앙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저자는 특히 “현대의 질병은 의학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태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과학적인 치료법 개발에 골몰하는 것만으로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의 건강과 환경의 건강이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깨닫고 새로운 행동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경고이다.
◑ 다시 전염병의 시대가 오고 있다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장인 윌리엄 스튜어트는 “전염병의 시대는 갔다”고 공언했다. 현대 의학의 힘으로 전염병과의 전쟁을 끝냈다는 자신만만한 선포였다. 14세기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이나 20세기 초에 약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같은 전염병의 창궐은 지나간 역사의 사건으로만 기록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악몽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눈앞의 현실로 지켜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1973년 이후 에이즈를 비롯한 40여 종의 전염병 병원체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2000년에 미국 CIA는 아예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2008년 5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처음 라임병균이 발견되었으며, 2020년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감염자는 1,170만 명(7월 8일 기준)에 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식탁에 올릴 음식을 고르느라 애를 태우고,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외국행 비행기를 타고, 감염되어 생매장당하는 동물들과 사망자들을 보며 공포에 떠는 것이 바로 일상의 풍경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듯, 전염병이 다시 21세기 인류의 천적이 된 것일까?
◑ 조심성 없는 인류가 빚은 여섯 가지 우화
이 책은 학술적인 전염병 연구서는 아니다. 하지만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신종 전염병의 원인과 발생 경로 및 확산 과정을 그 어떤 책보다 친절하게 설명한다. 저자가 전 세계를 돌며 질병의 첫 발생지를 찾아가 현장을 확인하고, 희생자와 가족을 인터뷰하며 치명적인 질병을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섯 가지 신종 전염병 이야기는 딱딱한 보고서를 넘어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비극을 보여주는 우화가 된다.
■ 첫 번째 우화, 광우병〉 이 질환은 소에게 강제로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결과 생겨난 것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식물을 먹도록 진화해온 초식동물에게 농축된 고깃가루와 뼛가루를 첨가한 사료를 먹인 것은 물론 단백질 함량을 높여 몸무게를 빨리 늘리기 위해서다. 더 나은 효율과 수익을 위해 먹이의 경계선까지 뛰어넘은 인간의 탐욕이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뇌 조직이 파괴되는 무서운 질병을 낳은 것이다. 결국 이 재앙은 동물뿐 아니라 사람의 뇌로도 옮겨왔다. 인간광우병이라고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이 소의 광우병에서 전염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동물의 잔해로 만든 사료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를 거쳐 그 고기를 먹은 사람으로 이어지는 고리에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 두 번째 우화, 에이즈(HIV/AIDS)〉 열대 밀림을 파괴하는 대규모 벌목 현장에서 야생동물 고기를 사냥해 먹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침팬지의 면역계를 통해 인간의 감염을 예방할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침팬지들은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에이즈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죽으면 그들이 줄 수 있는 단서들도 사라져요. 목표가 공중보건을 보호하는 것이든 위기에 빠진 침팬지를 보호하는 것이든 상관없어요. 두 목표는 하나이면서 똑같은 것이니까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동물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 세 번째 우화, 살모넬라 DT104〉 이를 비롯한 치명적인 항생제 내성 질환은 대부분 약물을 남용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어린 가축들이 어미젖에 든 천연 항생제를 먹을 기회도 주지 않고 비위생적이고 좁은 축사로 몰아넣은 후, 병에 걸리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약물을 주입하고 항생제를 섞은 사료를 먹이는 데만 신경을 쓴다. 이런 항생제 살육에 살아남은 세균들은 강력한 내성을 지니게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식중독이 순식간에 치명적인 질환으로 변할 수 있다.
■ 네 번째 우화, 라임병〉 감염된 진드기에 물려 전파되는 이 병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포식자-먹이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오래된 숲이 급속히 조각나고 파괴됨으로써 서식지를 잃은 포식자들이 줄어들자 털 속에 감염 매개체인 진드기를 싣고 다니는 생쥐와 사슴의 밀도가 높아진 데다 파괴된 숲속에 집들이 들어서, 이들이 사람과 쉽게 접촉하게 되면서 라임병 감염률이 증가한 것이다. 숲 한가운데 들어선 그림 같은 집, 그 주위를 평화롭게 오가는 사슴들이 아름다운 풍경의 이면에 조각난 숲과 생물 다양성의 파괴, 라임병 증가라는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 다섯 번째 우화, 한타바이러스폐증후군〉 폐에 물이 가득 차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결국 죽음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감염 질환으로, 엘니뇨로 인한 강수량 증가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비가 많이 내린 지역에서 늘어난 생쥐 개체군이 제2 서식지를 마련한 곳에서 사람들이 감염된다는 것. 엘니뇨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최근 엘니뇨가 오래 지속되면서 극단적인 날씨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한타바이러스 역시 인간의 활동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 여섯 번째 우화, 웨스트나일뇌염〉 모기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가 진원지인 웨스트나일뇌염 역시 지구 온난화에 닿아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요동치면서 가뭄과 혹서가 이어진 탓에 모기가 번성할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스트나일바이러스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는 숙주인 철새가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세계여행이 일상화된 것도 한 원인이다. 미국에서 첫 환자가 나온 뉴욕 퀸스의 경우 케네디 국제공항을 통해 드나드는 해외 승객이 연간 2,000만 명이 넘고,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검역소를 피해 몰래 들어온다. 비행기와 승객들의 몸에 붙어 무임승차하는 곤충들의 수는 또 얼마나 될까? 변화된 우리의 생활 방식이 새로운 미생물들을 배양하고 급속하게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자연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하다
그렇다면, 인류는 새로운 전염병의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떨고만 있을 것인가? 바이러스와 세균의 정체를 밝혀내고 새로운 백신을 속속 개발한다고 해도, 우리가 자신을 자연과 질병의 공격에 희생당하는 피해자로만 생각한다면 치유의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정복했다고 믿었던 병들이 또다시 나타날 것이고, 미지의 질병들은 끝도 없는 목록을 만들어놓고는 하나씩 문을 열고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열쇠는 우리 자신이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새로운 질병들의 생태학적 기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고리를 끊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생물들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인류 건강의 토대가 되는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복제하는 것이 중요한가, 소들의 건강을 돌보고 광우병에 걸리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가? 이 의미심장한 질문은 낭만적인 반문명주의자뿐 아니라, 개발과 과학,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절박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