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하지 않았어요. 임신.’
단 한 번의 폭주였고, 실수였다. 그 단 한 번이 이렇듯, 뜨거운 부지깽이로 오장육부가 헤집어진 것 같은 고통을 그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지옥 불구덩이에 빠진 것 같았다.
“젠장, 젠장!”
연신 터져 나온 욕설이 고요한 수면을 뚫고 들어가 한강 깊숙이 스며들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있더라고.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그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 같았어. 왜,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을 그만두고 홀연히 사라졌었잖아.’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것뿐 아는 것이라곤 없는, 그에겐 거의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여자였다. 아니, 어렴풋 표정이 말갛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억지로 의식 밖 저 멀리로 그녀를 밀어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아이를 키우고 있단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을.
“후우우.”
책임을 지겠다고, 결혼을 하겠다고 묻고 또 묻는 그에게 그녀는 끝끝내 아니라고 했었다.
절대 아니라고, 그를 위해 다행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심정대로라면 살인도 서슴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자신을 죽이고 싶은 것인지, 그를 속인 그녀를 죽여 버리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을 뿐.
그는 자식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버렸던 생물학적인 아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그녀를 찾아가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 그의 분노쯤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