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늦가을의 우울함이 깃든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공연장3회전 공중 돌기 연속 4회에 도전하는 목숨을 건 ‘러시안 바’ 트리오안전그물이나 눈속임 없이 고독한 삶의 실체를 붙잡아 낸 놀라운 작품안나, 안톤, 니노. 이 세 명의 트리오는 ‘러시안 바’ 종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5개 팀 중 하나다. 그들은 러시아 울란우데 경연대회 출전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레옹과 의상 제작자이자 화자인 나탈리는 그들의 아주 작은 감정의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안나가 바 위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다른 두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동물들이 없는데도 여전히 가시지 않는 서커스 공연장의 그 질척한 냄새 속에서 계절의 빛은 점점 더 옅어지고, 이야기가 진척됨에 따라 인물들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든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세 번째 소설인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는 전작들의 배경이었던 한국(『속초에서의 겨울』)과 일본(『파친코 구슬』)에 뒤이어, 이번엔 러시아의 국경선 근처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무대와 객석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블라디보스토크, 늦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즌. 공연이 없는 황량한 서커스 울타리 안에서 세 명의 단원이 러시안 바 훈련을 한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러시안 바를 어깨 위에 올리고서 트램펄린 챔피언이었던 안나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울란우데에서 열리는 국제 서커스 경연대회를 준비 중인 이들은 3회전 공중제비 연속 4회 성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로가 최고 수준의 유대감을 갖춰야 한다. 가까워졌다가도 어느 순간엔 “마치 원자핵이 터진 것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야 하는 그들은 고독한 존재들이다. 의상 제작을 위해 러시아에 온 나탈리는 이미 친분이 형성되어 있는 이들 팀에 끼어들려고 애쓰지만, 왠지 자신감이 없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러시안 바’라고 하는 서커스 종목을 통해 의사소통을 이루고 서로 간 ‘신뢰’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