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스쿨
교육에 관한 글이라면 대개 ‘빤하다’는 게 일반인들 생각이다. ‘교육’이라는 주제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읽는 이로 하여금 식상케하고, 그래서 대개는 보나마나 ‘공부 열심히 해라’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교육적이라기보다는 다소 노골적이며, 야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학생시절을 그리워하게끔 만든다.
“저어……. 사실은, 얘가 ‘no one(노원)’이 피임약이라고 해서…….”
“?”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나오는 ‘알리’처럼 아이들의 행동엔 다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란 게 너무나 단순해서 머리 구조가 복잡한 어른들은 정작 그 이유를 지나치기 일쑤다. 어찌됐든 난 나쁜 선생이다. 아니, 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선생이다. ‘청산별곡’을 가르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정작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는’ 아이를 만들어 놨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놈의 피임약 이름이 또 왜 하필이면 ‘노원’이야, 젠장.
저자는 매 글마다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관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단지, ‘교육을 교육하지 않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줄 뿐이다.
“좋아, 그런데, 그게 뭐가 아부냐? 그건 ‘아부’가 아니고 바로 ‘배려’라는 거예요. 너네들은 배려라는 것도 모르냐? 그렇게 남에 대한 배려도 없고 무관심하니까 세상이 이렇게 삭막하고 무서운 거 아냐?”
“선생님,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게 있는데 뭔지 아세요?”
“뭔데?”
“관심 있는 척하는 거요.”
“?”
또한 아이들의 모습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살아온 삶을 살짝 오버랩시킴으로서 한 편의 영화처럼 독자에게 아련한 감동을 안겨준다.
“좋아. 그럼 선생님부터…….”
갑자기 찾아온 낯선 정적 때문인가. 사뭇 긴장이 된다.
“좋아. 으흠, 우선 반성부터 할게. 사실은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님이 주욱 모시고 있었거든. 무척 편찮으셨어. 그런데, 그 편찮으신 어머니한테 선생님이 가끔…… 화를…….”
“?”
“!”
“......”
예상치, 정말 예상치 못했다. 얘들아, 아니, 그대들은 한 선생이 그 순간 전혀 뜻밖의 체험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대들 덕분에, 그대들의 수학여행 덕분에, 한 울보 선생이 평생 잊지 못할 참회를 하게 되었다는 것, 이 자리를 빌려서 그대들, 아니 그대들의 수학여행에 깊이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그리고 마치 카메라가 이 구석, 저 구석을 비추듯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수능시험장 안의 모습, 그곳의 장면과 분위기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자세히 보여준다. 저자 자신이 교탁 앞에 선 수능 감독관으로서, 수십 년 교직에 몸담은 교사로서, 또한 또래의 아이를 가족으로 둔 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이 시대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한 국민으로서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으로 시험장 구석구석을 살핀다.
고사실로 들어가니 역시나 한 여학생이 훌쩍거리고 있다. 애써 그 여학생은 쳐다보지 않고, 주의 사항 전달하고, 답안지 나눠 주고, 문제지도 나눠 준다. 그리고 종소리와 함께 시험 시작. 일제히 연필 사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리 영역이다. 그런데 ‘훌쩍, 훌쩍’ 조용한 고사실이라 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들린다. 사각사각, 훌쩍. 사각사각, 훌쩍, 훌쩍……. 한 여학생이 인상 쓰며 예의 그 여학생 쪽을 흘낏 쳐다본다.
갑자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만약 흘낏 째려보는 여학생이 훌쩍이는 소리 때문에 문제 풀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어떡하지? 그럼, 훌쩍이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다른 수험생들한테 방해가 되니 훌쩍이지 마라’고 해야 되는 건가?
있는 그대로, 조장하지 않고 아이들의 장점을 백분발휘할 수 있게 믿어만 주는 선생님. 그래서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란 룰루랄라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울러 독자들은 그동안 잊었던 것,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 그리고 현재 이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