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II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이야기)라 부를 수 있고,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주제로 해서 전개된다. 반면에 전쟁을 일으키고 또 그리스 군대를 총지휘하는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야기하는 인물로서 묘사되고, 그 원인으로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트로이아가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원인에도 역시 탐욕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트로이아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 영웅들의 모습은 바로 탐욕과 잔인함이고, 영웅이란 개념은 바로 탐욕과 잔인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때문에 영웅들의 탐욕과 잔인성은 신들이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에서 비켜나 있다. 그에 반해 그리스 사절단을 보호해주고 집으로 초대한 안테노르의 행동은 비록 사소하지만 크게 보이고, 전투 중에 만난 디오메데스와 글라우코스가 할아버지의 인연을 이유로 선물을 교환하는 행위는 트로이아 이야기에서 가장 영웅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영웅들은 1권에서 언급된 영웅들의 아들이자 손자라는 사실 외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고, 독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적 의미의 영웅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호머의 (일리아스)를 읽은 사람은 많겠지만, 만약 책의 내용만을 따지고 본다면, 과연 그것이 읽을 만한 책이라고 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직 전쟁과 살인, 탐욕과 배신으로 가득 채워진 이야기는 분명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라는 큰 틀 안에서 그리고 하나의 문학작품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호머가 들려주는 노래는 여전히 읽혀지고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 이 책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일리아스)라는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언제나 기억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