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삶의 본질을 가장 극명하게 밝혀내는 세계 문학의 거장들. 그들이 선보인 문학의 정수는 시대를 거슬러 이어지며 전세계 독자들에게 인생사의 온갖 기쁨, 슬픔, 분노, 절망, 회한을 전해준다. 이 책에는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작품 중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오 헨리, 찰스 디킨스, 슈테판 츠바이크 등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전 연령층의 교양필독서로 손꼽히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실었다.?책은 사랑, 희망, 회개, 용서, 희생, 우정 등 우리의 인생을 구성하는 12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장을 이루는 각각의 주제에는 그에 맞는 작품을 배치해 세계적인 명작을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으며, 해당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작가의 연대기나 그를 대표하는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작품 이해의 폭을 넓혔다.
저자소개
저자 : 0. 헨리 ?본명은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고,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양친을 잃어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숙부의 약방을 거들다가 카우보이·점원·직공 등의 일을 했다. 1887년 25세에 17세의 소녀와 결혼하였고,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주간지를 창간한 뒤로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은행 공금횡령 혐의로 3년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얻은 풍부한 체험을 소재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서부의 마음) <4백만) 등 계속 단편집을 발표하여 인기작가로서 지위를 굳혀, 불과 10년 남짓한 작가활동 기간 동안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썼다. 문학사적으로 비중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대표적 단편 <경찰관과 찬송가) <마지막 잎새) 등에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탁월하게 묘사하였다. 이밖에도 대표적 단편 <현자의 선물) <20년 후), 단편집 <운명의 길), <뒹구는 돌) 등의 작품이 있다.?저자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821년 11월 11일 모스끄바의 마린스끼 자선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월터 스콧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 소설을 탐독했다. 이후 비평가 펠린스키로부터 `제 2의 고골리`라는 격찬을 받은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당시 농노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급변하는 과도기 러시아 사회 속에서의 고뇌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데뷔는 화려했을지 몰라도, 이어서 발표한 <백야)와 <이중인격)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그 후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 주재의 공상적사회주의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1849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사형판결을 받고도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황제의 명으로 특별 사면되어(이 일련의 특사는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고, 옴스크에서 1854년까지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지하실의 수기)를 펴냈다. ?정신 분석가와 같이 인간의 심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해부하는 독자적인 소설 기법으로, `근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다면적인 인간상은 이후 작가들에게 전범이 되었다. 선과 악, 성(聖)과 속(俗),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사상가로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당대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변치 않는 삶의 영원한 가치를 전해 준다. ?주요 작품으로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죄와 벌), <미성년), <백치), <악령), <분신), <가난한 사람들), <아저씨의 꿈),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노름꾼), <영원한 남편) 등이 있다.?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러시아 중부 지방에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카잔 대학에 입학해 동양어와 법을 공부하다가 중간에 자퇴했다. 1851년 카프카스에 주둔한 포병대에 들어갔고,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1862년에 평생의 후원자가 된 소피야 베르스와 결혼한 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고, 대표작 <전쟁과 평화)(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7)를 집필하는 등 작품 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마지막 소설인 <부활)(1899)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두호보르 종파를 위한 자금을 모으려고 쓴 것이었다. 1910년 장녀와 함께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올랐으나 아스타포보라는 작은 시골 기차역에서 사망했다. 2010년 사후 백 주년을 맞는 톨스토이는 팔십여 년이라는 생애 동안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저자 :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1827), 시집 『동방시집』(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7월 혁명의 해인 1830년에는 희극 「에르나니」(1830)의 초연이 낭만파와 고전파 사이의 ‘에르나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에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로부터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1850년경까지 문단의 주류가 되었다. ?그 후에도 위고는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며, 시집 『가을 낙엽』(1831), 『내면의 음성』(1837), 『햇살과 그늘(1840)』, 희곡 「마리용 드 로름므」(1831), 「힐 블라스」(1838) 등을 발표했다. 소설 『노트르-담므 드 빠리』(1831)는 위고에게 민중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혀 주었으며, 1841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 뒤 위고는 10여 년간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전념했고, 1848년 2월 혁명 등을 계기로 인도주의적 정치 성향을 굳혔다. ?1851년에는 루이 나뽈레옹(나뽈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국외로 추방을 당하여, 벨기에를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 섬과 건지 섬 등에서 거의 19년에 걸쳐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시집 『징벌』(1852), 『정관』(1856), 『여러 세기의 전설』(1부, 1859), 소설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들』(1867) 등 대표작의 대부분이 출간되었다. 특히,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대하 역사소설로서, ‘인간의 양심을 노래한 거대한 시편’이자 ‘역사적, 사회적, 인간적 벽화’로 평가받는 위고 필생의 걸작이다. 1870년 보불 전쟁으로 나뽈레옹 3세가 몰락하자, 위고는 공화주의의 옹호자로서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1876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878년에 뇌출혈을 일으켜 정계에서 은퇴했다. 국민 시인으로서 영예로운 대접을 받았고,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내며, 『웃는 남자』(1869), 『끔찍한 해』(1872), 『93년』(1874), 『여러 세기의 전설』(2부, 1877; 3부, 1883) 등을 발표했다. 1885년 5월 폐렴으로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의 인파가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판테온에 안장되었다.?저자 : 슈테판 츠바이크 (Stephan Zweig)?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남다른 시적 감수성을 보였던 츠바이크는 김나지움 시절부터 호프만슈탈, 릴케 등에게서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고,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1901년 첫 시집 『은빛 현』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소설, 시, 희곡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원입대하여 군 신문의 기자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영향으로 반전(反戰)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에세이 『세 거장』을 비롯하여 『악마와의 투쟁』 『세 작가의 인생』 『로맹 롤랑』 등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출간했고,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전기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등을 집필하며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을 많이 선보였는데, 「낯선 여인의 편지」 『아모크』 『연민』 등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은 뛰어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해오자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1941년 자전적 회고록이자 자신의 삶을 축으로 하여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작품 『어제의 세계』를 출간하고, 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했다.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로 우울증을 겪던 츠바이크는 1942년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저자 : 워싱턴 어빙 (Washington Irving)?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 등과 나란히 언급되는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 1783년 뉴욕 맨해튼에서 부유한 철물점 상인 윌리엄 어빙과 사라 샌더스 어빙 사이에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방랑 기질이 있어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낯선 인물과 풍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열일곱 살 때 허드슨 강가를 여행하면서 강 인근의 수많은 전설을 접했다. 이때 들은 전설을 따와 허드슨 강 주변 슬리피 할로 골짜기를 배경으로 한 「립 반 윙클」과 「슬리피 할로우」를 창작했다. ?1804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영국, 스웨덴 등 유럽을 두루 방문하며 문학적 견문을 넓혔다. 1809년 디트리히 니커보커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뉴욕의 역사』는 절묘한 풍자가 담긴 희극 문학의 걸작이라 평가받으며 그의 이름을 미국 문단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기 직전 연인이었던 마틸다 호프만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반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1820년 『스케치북』 출간 이후 『브레복 연대기』 등을 꾸준히 펴내며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 무엇보다 마드리드 미국 공사관으로 임명되어 에스파냐에 체류하던 시기, 알함브라에 머무르며 무어인의 신비한 전설을 기록한 『알함브라』는 가장 낭만적인 에스파냐 여행기로 찬사 받았다. ?1859년 천식으로 고생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조지 워싱턴의 생애』 5권을 출간한 뒤 그해 11월 숨을 거두었다. 기존의 미국 문학이 보여주던 교훈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계와, 옛이야기의 우수 어린 분위기를 유려한 필치로 선보인 워싱턴 어빙의 작품들은 여전히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기념비적 고전으로 평가받는다.?저자 :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1812년 영국 포츠머스에서 해군 경리국의 하급관리였던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 배로의 여덟 아이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사립학교에서 잠시 교육을 받았지만 아버지가 빚으로 수감되어 열두 살 때 런던의 한 구두약 공장에서 하루 열 시간 동안 일을 해야만 했다. 이때 직접 겪은 빈민층의 삶이 후일 작품을 이룬 토대가 되었다. 중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열다섯 살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했으며, 곧이어 법원의 속기사를 거쳐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소년 시절부터 고전을 읽음으로써 문학에 눈을 떴으며, 기자 생활을 하며 많은 여행을 한 덕분에 넓은 식견을 갖출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 빈곤, 부조리한 사회 계급, 그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마다하지 않았다. ?1833년 잡지에 투고한 단편이 실리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1836년 단편집 <보즈의 스케치)가 출간되었다. 곧이어 발표한 고아 소년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으며 작가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작품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 등이 있다. ?1870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나 이를 거부했으며, 같은 해에 죽어 문인 최고의 명예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 받고 박해받는 자들의 지지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