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울, 낙
한날 한시에 부모를 역병으로 잃고 원산의 군수 공장에서 고된 삶을 이어가던 환과 낙, 서은 삼 남매의 앞에 화려하게 나타난 고모의 존재. 고모 아오마츠(靑松) 부인은 젊은 시절 어미와 아비의 죽음을 뒤로하고 일본에서 경성으로 부임온 아오마츠 백작의 후처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았다.
백작의 죽음으로 얻은 막대한 부는 아모마츠 부인의 화려한 삶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허영과 화려함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자격지심과 아쉬움이 후계자를 구실로 조카들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생면부지의 고모로부터 아버지 백일광(白一光)의 과거지사를 전해들은 환은 제 아비가 누이를 떠나야 했던 심정과 결심을 헤아리면서도 두 아우 낙과 서은의 고생을 끝내기 위해 철저하게 고모의 대리인으로 분해 경성의 푸른 소나무 저택으로 향한다.
경성 최고의 저택에서의 삶은 이전에는 도저히 꿈꿔볼 수 없었던 삶이었다. 고모의 요구로 경성제대 의대를 다녀야 했던 환과 연희전문 문학부를 다니던 동생 낙과 달리 서은은 여자로서의 삶으로 길들여진다.
경성에서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대저택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고모의 뜻을 따라야 했던 환은 동생들이 저택에서의 안정적 삶을 대가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그런 형의 사고를 가장한 희생으로 내심 형의 자리를 탐내던 낙은 드디어 저택의 유일한 후계자 도련님이 되는데….
한편, 서은은 오빠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고모로부터 여자로서의 길을 강요당하지만, 스스로 그 길을 깨고자 한다. 오빠들과 달리 고모는 서은이 가졌던 배움에 대한 열망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오빠의 책을 읽고 고모가 붙여준 가정교사 나오코를 졸라 배움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몰래 키워나간다.
서은의 가정교사이자 이화여전 학생인 나오코는 어린 시절 아모마츠 부인에게 이끌려 부인에게 길들여지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오코에게 제자이자 한낱 시골뜨기에 불과한 서은의 재능은 스스로를 자해할 만큼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데, 누구도 짐작지 않았던 서은의 재능에 아파한 존재는 나오코뿐만이 아니었다. 장난같이 시작되었던 낙의 서은의 작품 훔치기가 세 사람의 생을 파국으로 몰고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