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신분을 뛰어넘은 천재 과학자
하늘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한 장영실의 걸작 ‘자격루’와 ‘옥루’
세종 대왕과 장영실의 환상적인 조합, 조선을 과학 기술 강국으로 이끌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었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
이 말은 장영실에 대한 세종 대왕의 평가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장영실은 태종 때 발탁이 되어 왕실에서 일했지만, 역사에 드러나지는 못했다. 타고난 재능만큼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장영실에게 기회가 온 것은 한국 문화에서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한 세종 대왕 때였다. 농업은 국가 경제의 원천이었기에 24절기의 기상과 시간을 아는 것은 왕이 갖춰야 할 지식이었다.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으로 부국강병의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세종 대왕에게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고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한 천문학의 발전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장영실은 세종 대왕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과 생각을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통해 창조적으로 실현시켰다. 특히 자격루는 아라비아와 원나라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15세기의 최첨단 기술이었으며, 세종 대왕의 말대로 그 정밀함에 있어서는 최고의 기술력이었다. 즉, 당시 조선이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 강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발명품이기도 한 셈이다.
이후 장영실은 천체의 흐름과 자동 물시계의 기능을 합친 ‘옥루’를 만들었다. 옥루는 시간뿐 아니라 천체의 움직임을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지상의 걸작이었다. 오늘날은 그 유물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을 통해 장영실이 실현한 하늘의 웅장한 움직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은 ‘노비’라는 신분에서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바꾸어 놓은 역사의 물결은 그에게 하늘의 뜻을 열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행히 장영실은 자신의 재능을 바쳐 하늘의 비밀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지상에 실현시킴으로서 오늘날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