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나를 심연으로 빠뜨리는 우아하고 기묘한 상상”
〈환상특급〉보다 기묘하고 〈테마게임〉보다 아름다운 어른들을 위한 철학 그림동화. 살아가며 한 번쯤 마주치는 고민들을 동화처럼 소개한다. 이야기 자체로서도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기에 쉽게 읽으려면 호흡은 짧지만 여운은 긴 콩트 또는 에세이로도, 어렵게 읽으려면 감각적인 철학서로도, 읽는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비치는 책이다.
“귀꺼풀이 돋아나고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바로 답하고 싶지 않은 인생에 대한 질문이 문득 떠오를 때,
일상에 작은 틈을 내는 그림 같은 철학, 철학 같은 그림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좌우명이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부터 사실은 외계인이 아버지와 몸을 바꾼 건 아닐까 의심해왔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와는 말이 전혀, 말 그대로 전혀 통하지 않아졌다. 아버지는 듣고 싶은 말만 들었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냈다. 아버지는 세상이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믿을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소파에 파묻혀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낯설어 보여 새삼스럽게 아버지를 불러봤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듭 부르다 지쳐 텔레비전을 가로막고 나서야 아버지는 나를 쳐다봤다.
“뭐하다 지금 왔어? 밖이 얼마나 험한데, 하여튼 요즘 것들은 생각도 없고…."
여느 때와 같이 쏟아지는 잔소리에 안도하다가 문득 아버지의 귓가에 눈이 멈췄다. 아버지가 나를 돌아볼 때 그의 귀가 잠깐 깜빡인 것이다. 세상에 귀꺼풀이라니! 그런 게 달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날 이후 허둥지둥 집을 나와 독립했다.
집 밖으로 나와 살다 보니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세상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너무 많았고, 언제나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호되게 당했다. 출근하면서는 무례한 사람들이 내는 악다구니에 시달렸고, 퇴근하고 나서는 반지하방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소음들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듣기 싫은 말들은 적당히 거르고 듣고 싶은 말만 유도하는 요령도 생겼다. 들어야 하는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 즈음이 되자 거친 세상에도 적응이 되었다. 나는 이제 얼굴도 흐릿해진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 살아 보니 말씀처럼 세상이 그렇게 거칠지는 않네요.'
소파에 파묻힌 채 텔레비전을 보며 맥주를 홀짝이던 어느 날이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지만 꼼짝하기 싫어 창가로 눈을 돌려 못 들은 척하고 있으니 거짓말처럼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스름한 창문에 비친 나를 바라보다 문득 낯익은 것을 발견했다. 서둘러 귓가를 만져보니, 내 귀에는 어느 샌가 귀꺼풀이 돋아나 있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나 또한 아버지처럼 되고 말았다.
“나는 오늘 몇 시간이나 살아 있었을까?”
말은 짧게 여운은 길게,
철학자의 기묘하고 우아한 상상 47
어느 날 내비게이션이 사실은 길을 잘 모른 채 안내를 해왔다고 고백을 해온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세상이 미쳐버려 모든 것을 둘로만 나누게 되었을 때, 동료들이 다가와 토마토와 같은 중도우파 과일은 비겁한 맛이 나니 먹지 말라고 강요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른스러움이 점수로 매겨져서 시시각각 측정되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어떤 어른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할까? 만약 철학자라면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할까, 아니면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을까.
늦은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에, 나는 눈을 감았다
하루에 한 번,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마법과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불 꺼진 방에 누워 가만하게 천장을 쳐다보며 오지 않는 잠을 불러올 때다. 하루를 반추하며 문득 ‘오늘 나는 몇 시간이나 살아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새삼스럽게 던지다 보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는 한동안 이어지는 생각 때문에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누군가는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생각들과 함께 쏟아지는 잠에 침잠할 것이다.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은 그렇게 심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직한 속삭임이 그리운 밤, 그림과 함께 보면 그럴 듯하게 어울리는 철학 우화다. 우리와 괴리된 고담준론이 아니라 때로는 절절하고 대체적으로는 쓸데없지만 일상에서 한 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철학적 고민들을 47가지 기묘하고 우아한 동화로 은유했다.
독자들은 철학자가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떠올렸던 기발한 상상을 마치 CF 한 편 보듯 짧은 호흡으로 가볍게 접할 수도 있고, 친구와 술래잡기를 한 다음 어둑한 골목길을 따라온 그림자를 돌아보듯 두고두고 여운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낯설게 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굳이 거창한 철학적 고민이 아니라도 각자의 일상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개인적 체험과 공감으로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 같은 글과 글 같은 그림, 아버지와 딸이 나눈 묘한 대화
한 장의 그림은 때때로 한 편의 글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보는 이가 곰곰이 들여다 본 시간만큼이나 사연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각 글을 시각자료로서 보충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미를 품은 그림을 매 에피소드마다 곁들여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 쉽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삽화는 글쓴이의 장녀인 삽화가 김미현이 그렸다. 이러한 독특한 사연은 글쓴이 김한승 국민대 교수가 철학 논문을 쓸 때마다 재미있게 시작하고자 논문 도입부마다 삽입한 짧은 창작 이야기들에서 출발한다. 아버지의 논문을 읽어온 그린이가 중학생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해 삽화가가 될 때까지 철학자에게 답장하듯 그림으로 그 감상을 전하던 것이 하나둘 쌓였다.
그래서 삽화들 가운데에는 글을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충실하게 이미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 질문하듯 받아치거나 글을 이어받은 후일담 성격을 가진 것들도 있어 아버지와 딸이 담소를 나누거나 다투듯 글과 그림이 서로 도우면서도 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 콩트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그림이 마흔일곱 번 교차되는 통섭이자 아버지와 딸이 글과 그림으로 나누는 대화이기도 하다.
사는 게 정글정글할 때, 가끔 철학자처럼 딴생각
저자는 이 책의 글과 그림을 정글에 비유한다. 그동안 철학책들이 논리 체계를 정교하게 쌓아 길을 제시해주는 도시라면, 아직 정제되지 않은 사유가 글과 그림으로 날뛰는 이 책의 이미지는 도시 속 정글에 가깝다. 정글은 단순히 문명과 대비되는 밀림의 어수선함을 가리키지 않는다. 정글에는 모험을 떠난 소년이 있고, 야한 색을 가진 독버섯도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비밀의 숲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자면 반드시 철학 개론을 떼보겠다는 식의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잠시나마 일상으로부터 탈출해보는 짜릿한 상상일 것이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는 아마도 다음과 같지 않을까. 가끔 눈을 돌려 일상을 낯설게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