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연(連理之緣) 1권
왕위를 이을 기회를 박탈당한 왕의 적장자 륜, 왕의 밀지를 지키는 여인 송현.
그리고, 불꽃처럼 치열하기 위해 얼음처럼 차가웠던 한 여인 윤 대비.
처음 륜과 송현이 만났을 때 륜은 대군이었고 송현은 반가의 어린 규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났을 때 륜은 폐서인이었고 송현은 남장여인이었다.
세 번째 만남, 륜은 왕자군이고 송현은…….
연리지連理枝와도 같은 인연.
“살아남아 줘. 꼭 살아 줘. 만에 하나라도 나를 구하겠다고 너 자신을 버려서는 안 돼. 이건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네가 없는 나는…….”
네가 없는 나는 싹이 트지 않는 봄, 꽃이 피지 않는 여름, 단풍이 들지 않는 가을,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일 테니까. 나를 죽은 사계 속에 혼자 남겨 놓지 마.
“약조한다. 너 또한 약조해라.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리석은 마음은 먹지 않겠다고.”
네가 없는 나는 해가 사라진 낮, 달도 별도 없는 밤일 테니. 나를 죽은 낮밤 속에 홀로 남게 하지 마라.
* * *
“그 길은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험난할 것이니라. 목숨에 연연하고서는 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겠느냐?”
소녀는 이미 결연했다.
“그래도 그 길을 택할 것이옵니다.”
왕이 또다시 물었다. 표정과 목소리가 비감했다.
“그 길을 가게 되면 네 부모 역시 너와 함께 생사를 초월하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니라. 그래도 그 길을 가겠느냐?”
소녀의 어깨가 가늘게 흠칫했다. 말씀이 둔탁한 통증이 되어 가슴께를 관통했다. 소녀가 급작스레 엄습하는 망설임과 아픔을 안고 아비를 돌아보았다. 김충원이 초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아비가 마음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
‘조선의 선비 된 아비가 충절 앞에 목숨을 아끼겠느냐? 네 어미가 목숨이 아까워 네 길을 막을 사람이더냐? 네 길이 곧 이 아비와 네 어미의 길이다. 우리 세 식구, 이 시각부터 같은 길을 가는 동지다. 오직 네 의지대로 하거라, 송현아. 내 딸아.’
글썽글썽 눈물이 고인 송현의 눈이 왕을 향했다. 목이 메는지 끝마디에서는 기어이 목소리가 갈라졌다.
“소녀, 그 길을 갈 것이옵니다.”
왕이 무력감과 미안쩍음을 감추지 못한 채 탄식했다.
“과인이 못난 군주라서 너에게 크나큰 짐을 지우는구나.”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현이 튕기듯이 일어나더니 왕을 향해 나부시 큰절을 올렸다.
“예가 밝구나. 이름이 송현이라지? 뜻이 어찌 되느냐?”
“소나무에 비친 햇살이옵니다.”
저자: 김화진
출간작 <명화, 수주별곡>, <해당화, 홍자색 향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