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그리다
느린 걸음으로 쓰고 그린 지리산 둘레길의 기록. 지리산을 사랑하는 만화가가 둘레길을 걸으며 글과 스케치로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홀로, 때로는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찾아 생명과 자연을 배우고, 마을과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깃드는 과정을 들려준다.
걷기열풍 속에 변화하는 지리산 둘레길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사람과 생태를 먼저 생각하는 저자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둘레길 위에서의 체험이 일상에서의 상념과 또 다른 상상으로 흐르는 유쾌한 에세이. 둘레길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과의 일화가 재미를 더한다. 지리산 둘레길 5대 구간의 풍경 스케치와 그림 지도가 수록돼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관광지다?
지난 2008년부터 조금씩 열리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은 이제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3개의 도와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의 5개 시군을 둥글게 이어 가는 지리산 둘레길의 총 길이는 3백여 킬로미터. 지나는 읍면이 16곳이고 마을은 무려 80여 곳이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단장은 걷기와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체험을 제공했다. 승용차를 몰고 교외로 나가 먹고 마시거나 경치 좋은 곳의 펜션을 임대해 즐기는, 소비 일색이던 국내 여행의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홀로 조용히 사색하기 위해 걷기도 하고, 순례자의 마음으로 발걸음 하기도 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길 위의 자연과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마을 주민에게 감사하며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길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적지 않은 여행객이 앞다퉈 지리산 둘레길을 방문하며, 숲과 마을이 소란해지기도 했다. 산길에 쓰레기가 쌓이거나 농작물이 훼손되기도 한다. ‘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지리산 둘레길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걷기 좋은 봄날과 단풍철에 밀려드는 여행객에게 몸살을 앓던 마을 주민이 마을 밖으로 둘레길을 우회해 내 달라고 호소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다시 사람과 생명을 생각하는 여행기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그리다>는 지리산 둘레길 시범구간이 열릴 때부터 짬짬이 방문했던 만화가 고영일의 스케치 여행 기록이다. 저자는 지리산 둘레길이 한없이 조용했던 순간부터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근래까지를 모두 경험하며, 둘레길 걷기여행자의 ‘초심’을 담담히 전한다. 앞서 개통된 지리산 둘레길 5대 구간을 천천히 걸으며 소개하는 길 이야기와 그림은 읽는 이가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설렘을 준다.
숲 속의 새, 들꽃 하나에도 말을 걸며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대한 물음을 새긴다. 옥계저수지와 용유담에서는 지리산 댐이나 케이블카를 걱정하고, 황산대첩비나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빨치산 루트 안내도 앞에서는 고단한 역사를 간직한 지리산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휘감아 도는 흙길 위에서 도시 재개발을 비꼬거나 강을 바라보며 ‘삽질’을 경계하는 특유의 화법도 엿보인다.
민박집에서의 일화나 둘레꾼들과의 만남도 따뜻한 재미를 선사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오가는 정겨운 대화나 민박집에서의 식사는 둘레길 위의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갖고 있는 저자의 동경을 느낄 수 있다. 길 위에 낚시 의자를 펴고 앉아 스케치하고 있을 때 말을 걸어오는 둘레꾼들은 때로 동행이 되기도 한다.
지리산 둘레길 5대 구간 구석구석의 스케치와 그림지도 수록
자전만화인 전작 <푸른 끝에 서다>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저자는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을 통해 만화가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고 손과 마음이 흐르는 대로 지리산 둘레길의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백여 점의 스케치에는 초가집, 소나무, 오솔길, 민박집뿐만 아니라 둘레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만화 컷으로 담겼다.
지리산 둘레길 5대 구간은 마음을 여행하는 길(주천-운봉 구간), 나눔이 감사한 길(운봉-인월 구간), 나를 들려주는 길(인월-금계 구간), 삶을 배우는 길(금계-동강 구간), 평온을 담는 길(동강-수철 구간)로 구분해 실렸다. 각 구간의 경유지와 특징 및 정보, 꼼꼼한 손그림 지도가 수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