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서른이 유난히 달콤했던,
그 여자의 일기장을 엿보다
뭔가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나이,
그 서른에
매 순간 감동하며,
매일을 축제처럼,
그렇게 춤추듯 살고 싶은_
문화집시 페페의
깨알 같은 감성을 꾹꾹 눌러 담은
한 권의 책_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지는
‘특별한 시간’
서른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어렴풋이 사춘기였던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10대 시절, 그땐 얼른 대학생이 되고 싶었지. 그리고 그렇게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스무 살이 되니 찬란할 줄 알았던 20대, 너도 별 거 아니구나,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다. 몇 번의 이별을 겪으며 다가올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낯선 곳으로 떠나보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지극히 단순하고 조금은 식상한 이 진리를 몸소 깨닫고 나니, 어느새 내 나이 서른이 되어 있었다.
‘서른이 되면… 꽤 촉촉하고 깊은 눈,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쫀득쫀득한 언어, 그리고 아무리 황당한 일 앞에서도 후훗,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진짜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그 기대는 아직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전에는 몰랐던 진중한 사랑을 바라볼 때, 그럼에도 또 한 번의 이별을 경험할 때, 그리고 낯선 여행지에서 어린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마주할 때,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깨알 같은 행복과 감사를 절감할 때, 나는 어느새 눈이 촉촉해지고 화려한 언어가 아닌 지그시 웃는 미소로 마음을 대변하곤 한다.
세상의 잣대를 의식하느라 본연의 내가 아닌 만들어진 나로, 세상이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지난 시간들.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걸었던 최면이 서서히 풀리는 시간, 그래서 비로소 우리의 인생이 달콤해지는 특별한 시간, 서른.
삐딱하게 앉아서 불안해하느라 놓치고 지나간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면서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얼 해도 행복한 줄 몰랐고, 무얼 해도 사랑할 줄 몰랐던 나는,
방향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자 행복하지 않을 때에도 행복할 수 있고,
사랑이 떠난 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나를 둘러싼
무겁고 둔탁한 문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문은 당장 어떤 결과물로 가는 통로가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가는 통로였다.
나는 그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
자주 웃고 이따금 울게 하는, 내게로 가는 길은 꽤 달콤했다.
지독한 씁쓸함을 맛본 후에 찾아오는 아메리카노의 끝맛처럼!
-본문 중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_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
그래서 더 천천히 지나고 싶은 시간,
너와 나, 우리들의 서른
“DSLR 카메라까지 사기엔 턱 없이 모자란 여행 경비 때문에 대신 구입 한 것이 중고 펜탁스 Me Super 카메라였다. 하지만 비행기에 타기 직전까지 원고를 써야 했기에 카메라 작동법을 익힐 겨를 없이 허겁지겁 떠났다. 디지털카메라만 써봤던 나는 수동카메라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하나도 없었기에 사진을 찍다가 잘 찍혔는지 궁금해서 뒷뚜껑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리고 그런 멍청한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필름을 다 감을 때까지 뒷뚜껑을 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에 와서 현상한 여행 필름들은 대부분 타버리거나 초점이 흐릿한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막 실망하려던 찰나, 눈에 띄는 사진 한 장, 묘한 보랏빛을 풍기는 바다 사진.
어디부터 하늘이고 어디까지 땅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경계. 그리고 그 사이를 날고 있는 새 한 마리. 나는 이 사진 한 장 덕분에 타버리거나 쓸 수 없게 된 나머지 사진에 대한 아쉬움을 몽땅 잊을 수 있었다.” (프롤로그 중)
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
세상이 정해놓은 매뉴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익히는 게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따금 조바심 내며 카메라 뒷뚜껑을 열었던 것처럼,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순간순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던 지난 시간들. 그러나 이제, 우리 그런 뻔한 매뉴얼에 쿨하게 맘껏 비웃어 주자. 앞길을 알 수 없기에 더없이 아름답고, 순간순간이 고뇌의 연속이기에 겸허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까.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 그래서 더 천천히 지나고 싶은 시간, 너와 나 우리들의 서른.
밥보다 문화를 좋아하는 문화집시 페페,
_서른이 유난히 달콤했던,
그녀의 빼곡한 일기장을 엿보다
매 순간 감동하며 매일을 축제처럼 살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춤추듯 즐기고 싶은 어른 아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담고 느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낮고 가난한 땅을 여행하며 사는 삶을 꿈꾸는 그녀의 또 다른 이름, ‘문화집시 페페’. 밥보다 문화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영화, 책, 음악, 연극 등의 문화 리뷰를 연재하는, 진지하면서도 단순한 삶 연구가. 그녀의 서른은 어땠을까?
“서른은 스물하나에서 스물둘로 넘어가는, 그야말로 내게 평범한 나이의 단계였어요.
워낙 주변의 언니들에게 서른이 될 때 우울했다 하는 얘기를 자주 들었지만, 저는 자꾸 속으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취재차 시골에 갈 때면 이상하게 차로 가야 할 거리를 걸어서 가겠다 고집을 부릴 때가 많았어요. 목적지로 가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냐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방향이 아니라 무엇을 타고 가면 되는지를 먼저 말해줬어요. 그러면 저는 “걸어서 가려고요. 방향만 말해주세요” 하고 다시 물어봐요. 그때의 반응은 동일했어요. 거기까지는 걸어서 못 간다는 것. 하지만 의문이 들었죠. 과연 그럴까?
제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랬어요. 그들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미리 안 된다고 말했죠, 제게. 남아메리카 여행을 계획할 때도 여자 둘이서는 위험하다, 그 돈으로는 며칠도 못 지낸다 하는 식의 조언들. 그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날개를 꺾는 독이었어요. 이상하게 그때마다 저는 오기가 발동했어요.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해봐야겠군. 이런 식으로 원하고 바라던 계획들을 차츰 해나갔어요. 나는 무모할 만큼 남들이 아니야, 위험해, 하는 길로 가보려고 합니다. 그 길은 사막 같은 망망대해 혹은 남극처럼 위험 찬란한 지구 끝 같은 곳이에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곳을 여행하며 삶을, 사람을,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포기하기에 서른은 너무 어린 나이니까요.”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문화집시 페페. 그녀의 눈과 마음이 내어놓는 이야기를, 연필로 꾹꾹 눌러 담고 한 장 한 장 엮어 내니 소담하면서도 고즈넉한 그녀를 꼭 빼닮은 책 한 권이 완성되었다. 문화집시 페페의 감성에세이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콸콸 넘쳐 손끝으로 흘러나오는 속도가 손가락의 움직임보다 빠를 때, 물의 굴곡만큼이나 아름다운 몸의 선을 가진 누군가가 물속을 가르며 인간 돌고래의 몸짓을 할 때, 어느 할아버지 피아니스트의 손끝이 건반을 넘나들 때, 이른 새벽 어촌 공판장의 노동자들이 노련한 몸놀림으로 바쁘게 움직일 때, 그리고 여행객들의 여행가방을 들고 오르내리던 포터들의 코끝에 맺힌 땀방울이 햇빛을 받아 빛날 때…, 생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에 우리는 춤추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조심스레 묻는다.
“서른, 당신은 춤추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