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의 두여자
카미노 데 산티아고 800km!
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는 길!
가장 힘들고 가장 행복한 그 길에 두 여자가 섰다!
이마에 붙어 있는 무거운 꼬리표들을 떼어버리고 철저하게 이기적인 자신만의 시간을 열망했던 여자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늘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여서 생생하게 자신을 확인하고 싶었던 여자가 길을 떠났다. 가슴을 뜨겁게 달군 꿈이자 운명처럼 다가온 길. 아주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길. 그래서 결국에는 갈 수밖에 없는 길. 자유의 길, 구원의 길,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
카미노의 전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로부터 탄생했다. 전설에 의하면 야고보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까지 걸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헤롯왕에 의해 순교를 당한다. 그의 시신은 돌로 만든 배로 옮겨져서 바다에 띄웠는데, 그 배가 놀랍게도 산티아고 부근에 도착했다. 야고보를 추종하는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시신은 산티아고에 묻힐 수 있었다. 그렇게 전설은 잊힐 뻔했다.
하지만 800년의 세월이 흘러 수도승 페라요가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고, 야고보의 무덤 위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세워졌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의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는데, 목숨을 걸고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그들은 ‘순례자’로 불렸다.
그 당시 스페인 북부는 이슬람 세력 치하에 있었는데, 산티아고 순례는 국토 회복 운동과 맞물려 있었다. 밤에는 순례자들이 은하수를 따라서 걸었다고 해서 은하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은하수 길의 최종 목적지는 별들의 들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였다. 15세기까지 순례의 길은 번성했고, 길을 따라 수많은 유적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적지보다 훨씬 다양하고 놀라운 전설들이 탄생했다.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던 그 길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1982년 로마 교황이 산티아고를 방문하면서부터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유네스코는 1987년 산티아고 가는 길을 유럽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1993년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했다. 지금은 해마다 600만여 명의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몰려들고 있다.
두 여자의 여정
생장피드포르행→론세스바예스→라라소냐→팜플로나→푸엔테 라 레이나→에스테야→로스 아르코스→로그로뇨→벤토사→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벨로라도→아게스→부르고스→온타나스→산 니콜라스→비야르멘테로 데 시르가→레디고스→칼자디야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레온→비야르 데 마자리페→아스토르가→라바날 델 카미노→몰리나세카→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조→오 세브레이로→트리아카스텔라→사리아→포르토마린→팔라스 데 레이→아르주아→몬테 도 고조→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피네스테레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물음표 하나가 준과 지니의 가슴속에서 커지고 있었다. ‘나에게 카미노는 무엇일까?’ 똑같은 물음표를 안고 있지만, 똑같이 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피 말리는 경쟁을 뒤로 하고, 질주하는 속도를 가까스로 멈추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데도 카미노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훨씬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카미노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마법의 공간이다. 뭔가를 계획한다고 해도, 또 뭔가를 반드시 하고 싶다고 해도 원하는 방향으로 결코 가지 않는다. 내일, 아니 몇 시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길 위에서 준과 지니는 자꾸만 무엇인가를 규정짓고 재단하려고 했다. 이렇게 멀리 떠나왔으면서도 생각도 마음도 한국에 있을 때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카미노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카미노를 걷고 있는 순례자의 진정한 자세다. 준과 지니는 자신들의 어리석고 짧은 잣대로 자꾸만 뭔가를 규정짓고 재단하는 일을 내려놓기로 했다.
카미노는 아름다운 길이다. 끝없는 밀밭과 울창한 숲, 그림 같은 언덕과 험난한 산줄기가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양떼와 소떼는 물론 말떼도 만날 수 있고, 온갖 새들의 합창 소리를 언제나 들을 수 있다. 또한 길 중간 중간에 동화와 같은 마을들이 나타나 순례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카미노는 감동의 길이다. 저마다 영혼의 문제를 안고 온 순례자들은 온갖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다. 운이 좋으면, 아니 마음만 활짝 연다면 멋진 순례자들과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
화살표를 따라 마을을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펼쳐졌다. 키 낮은 잡목과 풀들이 군데군데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흙길. 거칠 것이 없어서일까? 바람이 불 때마다 길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명암이 생겼다 사라지는 광경이 반복됐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과 속도를 알 수 있었다. 바람과 구름에게도 그림자가 있다는 것, 그들도 그들만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우리가 지나온 발자국처럼 말이다. 카미노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 때로는 비와 눈, 이름 모를 꽃과 나무…. 자연이 함께 걷고 함께 호흡하는 길이다.
어쩌면 카미노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걷는 길이 아니라 버리기 위해 걷는 길인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인터넷도 전화도 하지 않게 됐다. 휴대전화 벨 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무언가를 통해 나를 끊임없이 확인시키는 대신 매일 걷는 내 발과 몸을 통해 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명의 이기를 대체할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서울에 두고 온 것들이 그립긴 했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길의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적응했다기보다는 지금 이곳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간간이 흩날리는 빗속에서 ‘산티아고’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산티아고가 머지않았구나. 카미노를 걸으며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 인생의 길은 결코 계획한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계획의 집들은 카미노라는 현실에 부딪히면 물거품처럼 무너져버렸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이끄는 대로 가라고 가르친 곳이 카미노다. 세웠던 모든 계획은 무너졌지만 꼭 한 가지 계획만은 이루어졌다. 종착점 산티아고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빗물을 타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도, 감동의 눈물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확신의 눈물이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모든 순례자들이 이곳을 향해 한 달이 넘는 고행의 길을 자처한다. 최종 목적지이자, 끝이자, 마지막인 곳. 그러나 피식 웃음이 났다. 며칠 전만 해도 물집 부상 때문에 혹시나 못 걷는 건 아닐까, 산티아고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안달복달했건만 막상 오고 보니 담담하기만 했다. 한순간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지만, 지금껏 걸어온 많은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오늘 묵을 곳에 도착했을 뿐, 내일이면 또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례가 끝난 것 같지가 않았다. 여기가 끝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나의 순례는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이 카미노를 기억하는 한, 이 순례를 끝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그 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평선 끝마다 닿아 있던 광활한 밀밭이 펼쳐진다.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던 유칼립투스의 향기가 전해져온다. 우리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기꺼이 손을 내밀었던 순례자들의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무엇보다 허약하기 그지없었던 우리의 체력으로, 우리의 두 발로 800km를 걸었다는 것, 그 꿈의 기억이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다.
지금도 카미노는 우리를 부른다. 언제든 훌훌 털어버리고 길로 나서라고. 또 카미노는 우리를 일깨운다. 원하는 것을 하라고. 늦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언제든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