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산다는 것
갈등과 희망의 현장, 교단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그래도 학생들이 기댈 곳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고단한 직업이다. 그리고 겁나는 직업이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대입이라는 중요한 관문을 넘어야 하는 중,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권위를 넘어선 곳에서,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학생들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선생님이며, 기본적으로 마음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20여 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이석범 선생님이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에 기고했던 교육칼럼과 그동안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사연들을 쓴 수필을 담은 책이다. ‘외톨이이지만 학교 도서실에서 자신감을 찾은 명택이’, ‘늘 겉돌았지만 선생님과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마음을 열게 된 동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빼빼로데이에 과자 살 돈이 없었던 경아’, 이석범은 작은 관심으로 이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그 속에 커다란 희망을 새겼다. 그 후 명택이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에서 국어시간이 기다려지는 박식한 문학 소년이 될 수 있었고, 수업방해만 하던 동규는 선생님의 단짝 친구가 되었고, 커서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경아는 진로를 결정하고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석범은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말을 믿으며 오늘도 묵묵히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을 보통 선생님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생님들이 있어서 우리는 질풍 같은 유년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잊혀지지 않는 옛 선생님들의 참모습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고민,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실상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아무리 공교육이 무너지고 선생의 지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철들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어 우리나라 교단은 아직 희망이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공교육이 산다”
사범대학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며, 교사가 되기 위해 치르는 임용고시 경쟁률 또한 높다. 그야말로 학교는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학교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교육 정책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석범은 공교육과 사교육은 엄연히 다른 분야라고 말한다. 학습 능력을 높이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교육과 달리 공교육은 개인의 각기 다른 ‘가치’를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하여 버젓한 한 인간으로 설 준비를 돕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학생들을 지식을 ‘주입’하는 ‘그릇’이나 ‘용기’로 취급하여, 그 그릇을 꽉 채울수록 교사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내용물을 고분고분 받아먹을수록 뛰어난 학생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진정한 성장을 방해하는 한계를 지운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의욕 넘치던 젊은 교사들이 차츰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무너진 공교육의 원인을 교사에게 돌리기 전에, 우리 사회가 뛰어난 교사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나무 한 그루 보다 숲을 키우는 교육을 꿈꾸며
“철수는 언제나 철수요, 영희는 늘 영희일 따름이다”
이석범은 교육이 한 명의 난 사람을 만들기에 목매달 게 아니라 ‘된 사람’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100명 중 단 한 명의 학생을 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나머지 99명의 학생이 들러리가 되는 지금과 같은 교육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모든 학생들이 각자의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난사람이 아니라 된 사람 만들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석범이 말하는 교육은 어쩌면 ‘자연을 닮은 교육’, ‘생태적인 교육’이다.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자신과 남의 구분 없이 서로 얽히고설켜 커다란 숲을 만드는 것처럼, 철수는 언제나 철수이고, 영희는 늘 영희인 채 서로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서로를 무시하지도 않은 채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의 전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수는 철수의 영역에서, 영희는 영희의 자리에서 일등인 것이다. 20년 넘게 학생들과 살을 부비며 체득한 이석범의 교육철학은 거창한 교육이념보다 크게 울린다.
“교단에 선 지 20여 년이 흘렀다.
이제야 어렴풋이 ‘선생님이 내 운명’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내 마지막 소망은 누군가의 마음에 ‘스승’으로 남는 것이다.”
이석범은 말한다. 선생님은 촛불과 같은 존재라고. 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힐 뿐 스스로는 녹아 없어지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이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 선생님이 아닌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운명적인 선생 노릇과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갈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석범은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울려 퍼지는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라는 황감한 노래가사에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진땀을 흘리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에게 부담감만을 주는 스승의 날을 교사의 날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말로 바꾸자고 말한다. 그리고 교사가 진정한 스승이 되는 순간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옛 제자가 찾아와 ‘선생님’ 하고 부를 때라고 말한다. 그때가 비로소 ‘스승 됨’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렇게 제자들에 의해 ‘스승 됨’을 인정받기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 혹은 사랑과 미움, 혹은 자책과 회한……. 그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민들레 같은 희망, 그것으로 엮어 만든 예쁜 조각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