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괘불
괘불은 불교 사찰의 법당 밖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 불화를 의미하는데, 높이 15미터 너비 10미터에 이를 정도로 크기가 다른 불화에 비해 크며 많은 불자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괘불 의식를 치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괘불 의식은 대략 17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하는데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산재, 가뭄 때 하는 기우재, 죽은 뒤에 치를 불사를 생전에 미리 하는 예수재(豫修齋), 물속과 땅위에 있는 영혼을 달래고 천도하는 수륙재(水陸齋) 등이 있다. 그밖에 나라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도 괘불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현존하는 괘불 중에서 의상대사의 설화가 전하는 부석사의 괘불은 그 역사가 오래된 작품의 하나로 영취산에서 모여든 설법회 장면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불법의 세계를 화상에 담아낸 부석사 괘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부석사 창건에 얽힌 의상대사의 설화, 괘불의 그려진 70여 명의 인물에 대한 해석, 현대 과학으로 밝힌 부석사 괘불의 디테일을 담고 있다.
의상 대사의 애잔한 설화를 간직한 부석사의 대형 불화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의상대사와 선묘의 설화로 유명하며 오랫동안 그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그 설화는 7세기 중엽 원효대사와 함께 중국 유학의 길을 떠난 의상 대사가 중국에서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던 선묘라는 아리따운 여인과 나누었던 애잔한 사랑 이야기, 의상대사의 귀국길에 선묘가 몸을 바다에 던져 용이 되어 보호했다는 이야기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부석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도 전하고 있는데, 신라에 귀국한 의상이 산천을 둘러보며 불법을 전할 터를 찾다가 현재의 부석사가 자리한 곳을 찾았으나 그곳에는 이미 삿된 무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다. 의상 대사의 마음을 읽은 선묘가 대변신을 하면서 산된 무리들을 ?아내고 그 자리에서 커다란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설화는 천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석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면서 깊은 내력을 간직한 부석사의 창건 스토리와 화엄도량의 면모를 웅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상대사의 창건 설화가 전하는 부석사는 한국 최초의 화엄도량지로서 봉황이 날개를 펴기 위해 잠시 움추린 듯한 형국으로
불쑥 솟아난 봉황산을 배산으로 삼아 자리잡고 있다. 무한강산이 발아래에 달리는 뛰어난 풍경이 시계를 탁 트이게 하고 태백산의 거대한 출렁임을 느끼게 하는 장엄한 풍광이 펼쳐져 있다. 인간사 희로애락의 복잡한 숨결들이 자리한 듯한 부석사 주변의 골짜기를 품으며, 괘불은 안뜰에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취산 법회 장면을 재현한 대형 불화, 부석사 괘불
현존하는 괘불 중에서도 시대가 꽤 오래된 작품에 속하는 부석사 괘불은 1684년에 조성되었으며 펼친 높이가 10미터에 가까운 장대한 불화이다.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듣기 위해 영취산(靈鷲山)에 모여든 청중의 모습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부석사 괘불에는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그려져 있는데, 설법회 너머로 시공간의 부처를 대표하는 세 부처(약사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를 또다시 그려놓은 것이 눈에 이색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수히 많으면서도 사실은 하나인 조선 시대 사람들의 부처관이 부석사 괘불을 통해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이 괘불에는 각 부처를 따라 설법을 듣는 보살과 천인, 팔부중, 역사, 신들이 무리들이 함께 그려져 대략 70여 명의 인물이 도해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에 유행한 삼신불회도와 삼세불회...도에 근거하여 괘불이 그려진 것임을 확인하게 한다.
61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부석사에서는 새로운 괘불을 조성하게 된다. 동시에 옛 괘불을 보수하여 청풍 신륵사로 보내게 된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옛 괘불의 보수와 새 괘불의 조성은 함께 진행되었고 같은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한다. 두 괘불을 비교하자면, 과거 괘불의 도상과 내용은 계승하되 그 표현과 스타일은 다소 차이가 있다. 현재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는 새 괘불은 옛 괘불에는 없었던 노사나불이 석가모니불 아래에 그려져 있는 것이 눈이 띄는데 그 그림을 그린 화승들의 독자성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부석사 괘불에는 많은 부처를 포개고 포개어 하나의 부처 안에 담아낸 진리에 대한 사고가 깔려 있다 할 수 있다. 각각의 부처가 실상은 하나인 것은 화엄경의 가르침과 같은 이치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살펴 본 괘불의 미시 및 비가시 세계
불교미술사 혹은 종교적 관점이 아닌 보존과학적 관점에서 괘불을 살피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 관찰한 부석사 괘불의 이모저모는 우리 문화유산을 심층적으로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유용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괘불을 그릴 바탕천은 그 크기를 감당할 수 있는 비단이나 삼베가 없기에 두 개 이상의 천을 연결해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부석사의 괘불은 한 폭이 37센치미터에서 63센치미터에 달하는 13폭의 비단을 연결하여 바탕천을 마련했다.
또한 이 책에는 초그리기, 채색 및 배접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과거 화승들이 이 괘불을 어떤 공정을 거쳐 완성했는지를 실감나게 추리하게 해준다. 더 나아가 부석사 괘불에 사용된 바탕천의 재질, 안료의 채색기법은 전자현미경 관찰결과를 토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안료의 성분 분석 역시 X-선형 형광분석기를 이용하여 색상, 전채법, 혼합사용, 채색 기법 등을 현대의 기법과 비교하면서 분석틀을 제공하고 있어 시공간을 뛰어넘은 흥미로운 감상법이 추가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