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리 남자 - 윤효 소설집
윤효, 5년 만의 창작집 - 서늘한 음색으로 빚어낸 성숙의 힘
전작과 변별되는 부분은 이런 형식상의 세목들뿐만이 아니다. 소설적 관심의 폭이 전작들이 보여준 선뜩한 이미지의 촉수들이 감히 미치지 못한 삶의 세밀한 구석까지 미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의 폭의 확대는, 물론 성숙해진 작가적 관점의 전환의 실례로 보여진다. 표제작인 「베이커리 남자」가 결락과 상실이 만연하는 일상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조장한 아버지에 대한 상처(喪妻)한 남자의 애증과 욕망의 세계를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면 「성가족」은 어긋나고 변형된 가족의 질서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미성년의 정신적 분투가 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이밖에도 세속적 욕망이 가득 찬 도시에서 점차 부속화, 단자화 되어 가는 여성의 실존적 현실을 냉정하게 되묻는 작품(「미세스 랑콤」), 아버지가 부재하는 자리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면서, 삶에 내장된 장치들을 숙지해나가는, 운명의 형식에 수긍해 나가는 미성년을 그린 작품(더블 베드), 그리고, 세속적 가치 속에 방치된 두 여중학생을 내세워, 존재와 그 존재감을 강박하는 현실 사이의 폭력적인 거리를 탐문하는 작품(폴리시아스)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문제 삼는 것은 우리 다양한 삶의 여실한 풍속들이다.
이 책에 수록된 윤효 소설의 목소리는, 날선 직관으로 삶을 통찰하고 회의하고 예지하는 부분에 강세점이 붙어진다. 이를테면 윤효의 목소리는 예지하는 동시에 회의하는 목소리다. 그것은 삶을 깊이 응시하고, 내분을 가라앉히고, 노련하게 탐문하는 성숙한 화자의 목소리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그러므로 알면서 행하는, 책임 질 수 있는 말들을 통해, 우리 삶의 자잘한 외연적 사건들 속에서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운명적 기미를 발굴해 내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소설의 재래적인 역할을 새삼 상기하게 해주는 동시에 소설이 사회에 대해 갖는 환기적 기능을 훌륭하게 확보한다. 이번 소설이 작가 자신의 변신과 아울러 또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