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넓으시어 성자성손은 대대로 계승하여, 피리소리 북소리들은 요순의 태평시절을 말하는 듯하고, 의관과 문물은 우임금과 탕임금의 평화스럽던 시절의 버금이라. 좌우에서 보필하는 신하들은 모두 주춧돌이 될만한 신하들 뿐이요, 용양호위의 각위에는 간성의 장수들이라.
조정에 흐르는 덕화가 먼 시골에까지 퍼졌으니 사해에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리어 있더라. 충신은 조정에 가득하고 효자와 열녀는 집집마다 있더라.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비와 바람이 때를 어기지 않고 순조로우니 배를 두드리며 사는 백성들은 곳곳에서 격양가를 부르더라.
이 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의 유명한 기생으로서 일찍이 기생에서 물러나 성씨라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나이 바야흐로 사십이 되었으나 일점 열육이 없어 이 일로 인하여 한이 되어 길게 탄식하고 수심에 잠겨 병이 되었구나. 하루는 크게 깨쳐 옛 사람을 생각하고 남편을 들어오라 청하여 여쭈오되 공손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를 끼쳤던지 이생에 부부되어 창기 행실 다 버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길쌈도 힘썼건만 무슨 죄가 이리 많아 일점 혈육 없으니, 육친무족 우리 신세 조상의 제사를 누가 받들며, 죽은 뒤의 감장을 어이하리. 명산대찰에 불공이나 들이어 남녀간 낳기만 하면 평생의 한을 풀 것이니 당신의 뜻이 어떠하시리오?
성참판이 하는 말이,
'일생 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낳을진댄 자식없을 이 누가 있으리요.' 하니, 월매가 대답하기를,
'천하 대성 공자님도 이구산에 빌어 낳으시었고, 정 나라 정자산은 우형산에 빌어서 낳았으며 우리 동방의 강산을 이을 진대 명산대찰이 없을소냐. 경산도 웅천의 주천의는 늦도록 자녀가 없어 최고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빌었더니 대명천자 나계시어 대명천지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나 드려 보사이다.'
<춘향전>은 이본(異本)이 120종이나 되고 내용도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현대에도 꾸준히 영화화 될 정도로 내용성을 지닌, 우리나라의 뛰어난 고전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이러한 <춘향전>의 원전 내용을 최대한 살려 옮긴 것이다. 엮은이들은 그저 줄거리에 맞춰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판소리계 소설인 만큼 율문적 문체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원전에 나오는 어려운 한문 단어는 한자를 함께 표기하고 그 뜻풀이를 적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