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다린 사랑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사랑을 지켜내리라 했다. 그에게 사랑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옛 연인에게 다 줘 버려 더 이상 그녀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그렇게 확실하게 암시했다 했을지라도 괜찮노라고, 상관없노라고 했다. 사랑을 다시 일으킬 자신이 있노라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노라고.
그녀에게 그건 운명이면서 어떤 소명같은 것이었다. 유년의 상처로 깊고 캄캄한 그의 마음속에 스며들어가 그 어둠 속에서 기꺼이 그를 끌어올리리란 당찬 다짐같은 것.
그래서 그에게 사랑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와 결혼했고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에 자신이 있었기에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라 버린 샘에서 이미 의미를 잃어버린 사랑을 건져 올리려 한다는 건 무모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준하는 밤 11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내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이던 주은은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열쇠로 열고 들어왔는지 갑자기 나타난 남편의, 무서운 침묵으로 무장한 어두운 표정에 할말을 잊은 것처럼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그는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듯 하더니 이내 시선을 비키며 무미한 동작으로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푸르기 시작했다.
순간 타이를 잡아당기던 그의 손이 멈칫하면서 긴장한 숨이 멈춰지듯 와이셔츠 속 가슴의 실루엣이 두드러지게 올라왔다 멈춘 채로 그대로 정지했다.
주은은 뒤 돌아서며 외면하는 그의 말에 불안감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등 돌린 그의 앞으로 돌아가 조절하지 못한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렇게 쏟아 내듯 말하기 시작했다.
뒤돌아 선 그의 어깨가 움찔하는 모습에 주은의 가슴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두렵던 그 생각이 현실로 되어지는 그 느낌에 한 없이 겁이 났다. 하지만 그의 아이 아닌가!…… 결코 거역할 수 없는, 그가 만든 운명 아닌가!…… 그는 절대 거부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만약 그가 그런 내색이라도 한다면 절대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그녀의 그런 생각을 배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