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던 백범일지를 전자책으로 서비스 하는 것으로, 보급판보다 백범 선생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표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백범일지』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전국민의 필독서이다. 27년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스승 백범 김구.
이 책은, 일제 침략 아래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살길을 열고자 해방된 통일조국 건설에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끝내 비명에 간 그의 생애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1947년 최초로 출간된 『백범일지』는 이후 수많은 판본들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20여 종이 넘는 대다수의 판본들은 원본에 의거해 살펴볼 때 많은 부분이 삭제, 축약되어 있거나 잘못된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돌베개에서 출간된 『백범일지』는 백범의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가지 출간본 등 기존에 나온 저본을 일일이 면밀하게 검토 대조하여 교감하였다. 사전류는 물론 고전, 규장각 자료 등의 고문서, 수많은 회고록, 일본 중국 등 해외의 임시정부 관련자료까지 두루두루 활용하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아 원본의 미흡한 점과 착오 등을 수정 보완하였다.
수많은 판본이 나왔으나 정작 정본은 부재한 현실에서 원본 『백범일지』의 정본화 과정에 완벽성을 기한 돌베개 출판사의 『백범일지』는 지금까지 나온 출간본 가운데 가장 모범적이고 표준이 되는 『백범일지』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소개
본관 안동. 호 백범(白凡). 아명 창암(昌岩). 본명 창수(昌洙). 개명하여 구(龜,九). 법명 원종(圓宗). 초호 연하(蓮下). 황해도 해주 출생. 15세 때 한학자 정문재(鄭文哉)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893년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접주(接主)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八峯都所接主)에 임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이듬해 귀국,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 쓰치다[土田壤亮]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었다. 복역 중 1898년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승려가 되었다가 이듬해 환속(還俗), 1903년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9년 황해도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있다가 이듬해 신민회(新民會)에 참가하고,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감형으로 1911년 출옥하여 김홍량(金鴻亮)의 동산평 농장 농감(農監)이 되어 농촌을 계몽하였다. 3·1운동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경무국장(警務局長)·내무총장·국무령(國務領)을 역임하면서, 1928년 이시영(李始榮)·이동녕(李東寧) 등과 한국독립당을 조직, 총재가 되었다. 이로부터 항일무력활동을 시작,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을 조직, 1932년 일본왕 사쿠라다몬[櫻田門] 저격사건,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일본왕 생일축하식장의 폭탄투척사건 등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1933년 난징[南京]에서 장제스[蔣介石]를 만나 한국인 무관학교 설치와 대(對)일본전투방책을 협의하고 1935년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였으며,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重慶]으로 옮길 때 이를 통솔하였고,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 사령관에 지청천(池靑天)을 임명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1945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對日宣戰布告)를 하는 한편, 광복군 낙하산부대를 편성하여 본국 상륙훈련을 실시하다가 8·15광복으로 귀국하였는데, 임시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정부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므로 한국독립당 위원장으로서 모스크바 3상회의 성명을 반박하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하였다.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 부의장, 민주의원 부의장, 민족통일총본부를 이승만(李承晩)·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이끌면서 극우파로 활약하였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하였다. 그 후 북한으로 들어가 정치회담을 열었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고 중간파의 거두로 있다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였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목차
상권 제1부
사진자료
교감 원칙
일러두기
백범 출간사
인·신 두 아들에게
1. 황해도 벽촌의 어린 시절
1) 조상과 가정
2) 난산의 개구쟁이
3) 궁핍한 배움길
2. 시련의 사회 진출
1) 과거 낙방
2) 동학의 세계로
3) 팔봉 접주
4) 청계동 안진사
5) 스승 고능선
상권 제2부
3. 질풍노도의 청년기
1) 북행 견문과 청국 시찰
2) 김이언 의병
3) 인연 없는 스승의 손자사위
4) 복수 의거, 치하포 사건
5) 첫번째 투옥
6) 역사적인 심문
7) 사형수의 옥중생활
8) 파옥
상권 제3부
4. 방랑과 모색
1) 서울로 도피
2) 삼남견문록
3) 출세간(出世間)의 길
4) 장발의 걸시승
5) 동지를 찾아서
6) 스승과의 논쟁
7) 부친상, 미혼처의 죽음
8) 교육자의 길, 그리고 결혼
상권 제4부
5. 식민의 시련
1) 을사늑약과 구국운동
2) 안악 양산학교와 하기 사범강습
3) 각 군 순회 교육운동
4) 재령지역 교육운동의 추억
5) 신민회와 안악 사건
6) 세번째 투옥과 고문
7) 기약없는 15년형
8) 서대문감옥으로
9) 옥중의 의·식·주
10) 기인과 영웅
11) 다시 인천감옥으로
6. 망명의 길
1) 출옥, 고향으로
2) 농감생활
3) 상해 망명
4) 경무국장에서 국무령까지
5) 내 인생을 돌아보며
하권 제1부
하권을 쓰고 나서
1. 상해 임시정부 시절
1) 상해에서 첫출발
2) 경무국장 시절
3) 사상 갈등과 국민대표대회
4) 무정부상태의 국무령
2.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
1) ‘일본영감’ 이봉창
2) 일본 천황 불행부중(不幸不中)
3) 윤봉길과의 짧은 만남
4) 홍구공원의 쾌거
3. 피신과 유랑의 나날
1) 위기일발의 상해 탈출
2) 광동인 장진구
3) 시골 농부의 민족주의
4) 여사공과의 선상생활
4. 다시 민족운동의 전선으로
1) 장개석 면담과 낙양군관학교
2) 5당 통일운동
3) 폭격 속의 남경생활
4) 어머님에 대한 추억
5) 가슴에 박힌 총탄
하권 제2부
5. 중경 임시정부와 광복군
1) 전시수도 중경으로
2) 7당 통일회의
3) 광복군 창설
4) 대가족과 대륙에 묻힌 영혼
6. 해방 전후의 대륙1)
1)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2) OSS 국내침투훈련
3) 왜적의 조기항복
4) 중경생활 회고
5) 해방 직후의 상해
7. 조국에 돌아와서
1) 감격의 귀환
2) 지나온 자취를 찾아서
3) 삼남지방 순회
4) 서부지방 순회
나의 소원
첨부자료
백범 연보
『백범일지』 판본에 대한 해제
『백범일지』 교감을 끝내고
참고문헌
백범일지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