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이야기 사슬
근대성이 몰락한 폐허 위에 자리잡은 현대인의 소외의식, 극단적인 외로움과 존재의 불안을 보여주는 소설집. 저자는 전통적인 소설구조를 파괴하면서 패러디를 사용하여 근대인의 일그러진 영혼을 드러내보인다.그의 소설은 「곱사등이」「낙타가 등장하는 꿈」「자신을 저격하다」「미친 코끼리」「살인에 대한 상상」「카프카와의 대화」등 제목들이 암시하듯 허무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슬픔을 운명처럼 지니고 있는 난쟁이나 꼽추, 혹은 인간의 불안한 의식을 암시하는 악몽이 글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 책의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검은, 이야기, 사슬. 어둡고 안정되지 못한 존재들, 때로 비현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상황들과 본래의 궤도에서 끊임없이 이탈하는 듯한 묘사들이 사슬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하나의 이야기와 독립되어 아주 작은 조각들을 이루곤 있지만 그 작은 조각들은 서로의 입과 꼬리를 다닥다닥 물고 있다.어둡고 침울한 지은이의 상상력은 매우 사적으로 보인다. 마치 그 동안 꾸어왔던 자신의 어두웠던 꿈을 묘사하는 양, 글 안에 들어찬 상징과 은유들은 전통적이지도 전형적이지도 않다. '소설'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이것이 소설인지 단지 사유의 서술일 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글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영문의 글들은 때로 곤혹스럽다.하지만 이런 게 그의 글을 폄하할 이유는 못된다. 아무리 작가중심적인 글들이라도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남으로 작가 자신의 해석을 떠난다. 읽는이는 이 독특한 상징과 은유들 안에서 나름의 상상력으로 읽는이 각각마다 서로 다른 텍스트를 읽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작가가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일관된 어떤 이미지일 뿐, 글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호소하는 설득력에 있어선 조금 더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 글이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추구한 것이든, 내부적으로 침전해 있는 지은이의 사유를 끄집어낸 것이든, 불안과 혼돈의 종말론적인 인간 의식을 묘사한 것이든 읽는이로 하여금 무언가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실이나 독자와 완전히 분리된 관념은 공허하게 공중에 흩뿌려질지도 모른다.